남한강을 끼고 있는 강천면은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단독주택이 군데군데 자리잡은 가운데 인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한적한 농촌 그대로다. 반면 강 상류인 섬강이 지나는 문막읍은 군데군데 공장 굴뚝이 솟아있고 아파트를 짓기 위한 공사가 진행돼 인파가 북적댄다.
▼글 싣는 순서▼ |
① 기업 발목 잡는 공장총량제 ② 공장은 허물고 신도시는 개발 ③ 여주는 'No', 문막은 'Yes' ④ '대학도 총량제' 논란 |
실제로 강천에는 공장이 17개에 불과한 반면 문막은 40배가 훨씬 넘는 786개다. 인구도 강천은 3800여명이지만 문막은 4배가 넘는 1만6000여명이다.
이같은 차이는 수도권에 포함되느냐의 여부에서 비롯됐다. 수도권인 강천지역은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과 상수원보호구역, 수변구역 등으로 묶이면서 개발이 원천 봉쇄된 반면 수도권에서 제외된 문막은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이같은 구분은 실제 지형의 특성은 무시한 채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탁상행정의 결과로 지적된다. 지류에서 팔당상수원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유하(流下)거리’를 보면 강원 춘천시와 홍천군은 수도권인 경기 가평군 북면, 여주군 강천면, 이천시 장호원읍(80㎞)보다 훨씬 가까운 50㎞인데도 규제 대상이 아니다.
여주군 관계자는 “한강과 섬강 모두 팔당으로 흘러드는 상수원인데 행정 경계를 이유로 남한강은 보호하고 섬강은 규제에서 풀어놓은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경기도는 “수도권의 과밀화를 억제하겠다는 취지의 각종 규제가 행정구역에 얽매여 제 기능을 못하는 만큼 시급히 수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경기 부천시에 있는 미국계 반도체 제작업체인 F사. 98년 국내기업의 반도체 공장을 사들인 뒤 2003년까지 2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으로 사업을 해 왔지만 요즘 다른 나라로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6개월 단위로 신제품을 선보여야 살아남는 반도체 시장의 특성에 맞게 생산라인을 수시로 바꾸고 생산시설도 확장해야 하지만 수정법에 막혀 이도 저도 못하고 있기 때문. 지난해에는 급한 나머지 가동 중인 라인을 신제품 라인 설치를 위해 철거하는 일도 겪어야 했다.
경기도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가평군은 300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는 공장이 한 개도 없고 인구밀도(99년 기준)도 ㎢당 67명으로 전국 평균의 14% 수준이다.
경기도는 99년 6월 미국의 대기업과 가평군 상면 축령산에 대규모 레저타운을 짓기로 했다. 투자비만 3억2000만달러(약 4160억원)에 이르는 대형 사업으로 투자의향서까지 교환했지만 관광지 개발규모를 6만㎡(약 1만8000평) 이하로 제한하는 수정법에 발목을 잡혔다. 결국 그 해 10월 미국기업은 사업을 포기했고 개발 계획은 무산됐다.
세계적인 테마파크 개발업체인 ‘레고랜드’는 98년 경기 이천시에 100만㎡(약 30만평) 규모의 놀이공원을 조성하려 했지만 99년 사업지를 독일로 변경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현행 수도권 규제는 찾아오는 외국기업을 다른 나라로 내쫓게 만든다”고 말했다.
▽“규제지역 확대가 해결책?”〓건설교통부는 수도권 규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강원와 충북 등 수도권 인접 지역에 대한 규제가 약하기 때문에 비롯된 문제라고 설명한다.
건교부 최재덕(崔在德) 국토정책국장은 “94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할 때 수질보전은 환경부가 맡아 물줄기(수계)를 따라서 개발 규제 지역을 정하기로 했으나 민원이 심해 개정법안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수도권의 생활용수 공급원인 팔당상수원 보호를 위해선 현행처럼 행정경계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물줄기를 기준으로 하고 수도권 접경 지역인 강원과 충북지역도 수도권 수준으로 개발을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규제 개선 필요”〓전문가들은 정부의 수도권 정책 목표가 합리적이지 못한 만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손재영(孫在英) 교수는 “수도권을 둘러싼 규제는 환경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인구를 억제하려는 것인지 모호하다”며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낙후지역이 상당수 존재하는 경기도를 ‘수도권’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개발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실을 외면한 채 행정구역에 꿰어 맞춘 규제에서 탈피해 경기 강원 충청을 뛰어넘는 환경보호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도권패트롤팀>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