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인근 전세금이 오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며 “한달에 200만원씩 내고 어떻게 살겠느냐”고 호소했다. 김씨는 요즘 이사갈 곳을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또 서울 송파구 암사동의 다가구주택에 사는 주부 홍모씨(32)는 지난해 11월 전세가 만료된 이후 기존 전세보증금 2500만원 외에 집주인에게 월세 20만원을 더 내고 살고 있다. 홍씨는 “목돈이 없어 월세를 택했는데, 살림이 너무 빠듯하지만 그나마 이사를 가지 않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제난이 계속되는 데다 금융기관의 금리가 낮아지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으나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흡해 세입자들이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도 월세 시스템으로 가는가〓최근 주택은행의 ‘도시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증금을 낀 월세 매물이 크게 늘어 전국적으로 계약이 이뤄진 임대매물 중 월세 비중이 30%대에 이른다. 전세의 월세 전환은 수도권과 중소형 아파트 위주로 확산되고 있다.
월세로 계약된 사례의 60%가 30평 이하 규모의 아파트. 월세로 바꿀 때 금리는 3월 현재 평균 연리 16.8% 수준. 시중금리(회사채 수익률 연 8%, 정기예금금리 연 6%)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대한주택공사 김용순(金龍順) 주택연구소 선임연구원은 “95년 인구주택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자가거주 가구비율은 전국 53.4%, 서울 39.7%로 서울의 경우 60% 이상이 전세 또는 월세와 관련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응책〓현행 주택임대차 보호법에는 보증금이나 월세를 인상할 경우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규정이 들어 있다. 그러나 김남근(金南根·참여연대 집행부위원장) 변호사는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는 관련 규정이 없어 규제가 불가능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과다한 임대료가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는 3월 당정협의를 거쳐 △저소득층에 대한 전월세 보증금 대출액 인상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권장임대료(가이드라인)’ 제도 등을 골자로 한 ‘전월세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박원석(朴元錫) 시민감시국 부장은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을 감안할 때 지원폭이 기대에 못미치며 당장 전월세를 구하기 어려운 판에 조정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세입자가 많지 않고 분쟁조정위 등은 법률적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주택임대차 보호법 개정 주장〓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참여연대가 주최한 ‘주택임대차 시장의 구조변화와 세입자 보호대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김남근 변호사는 “세입자 주거불안을 완화시키고 월세 정착에 따른 새 임대차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적정 임대료 산정기준과 세입자 보호를 위한 제도정비 방안 등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참여연대는 3월27일 △임대인이 임의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수 없게 하고 △월세 기준이율을 주택대출금리 범위 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집주인 입장도 고려해야〓김용순 연구원은 “주택 매매가격 안정에 따라 월세로 수익을 보전하려는 임대인 측의 보상심리도 고려해야 하며 월세 제한 등은 사유재산권 침해논쟁을 일으킬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월세가 주택가격에 준해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우리나라의 주택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므로 세입자 주거비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