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령 편지

  • 입력 2001년 5월 11일 20시 11분


김선생님 內外分께

선생님, 사모님, 그동안 많은 苦痛과 마음 아픈 시간들을 보내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지난 98년 8월 안부를 여쭌후 여러 여건들로 인하여 如意치 못해 이제서야 안부 書翰을 드리게 됨을 널리 諒解하여 주시옵기 仰望하나이다.

不肖小人과 집사람은 囹圄되신 몸으로 筆舌로 形容치 못할 心的, 肉體的 苦痛을 다 겪고 계신 선생님과, 더욱이 獄바라지 하시랴 가정 꾸려 나가시랴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계시는 사모님께 대하여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고 그 苦楚를 함께 나누지 못하고 있는 處地를 怨望까지 하고 있는 것이 저희의 眞心임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歲月이 藥이라한들 痛恨으로 点綴된 나날들을 정신력으로 堪耐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試鍊이요 고통이거늘,祖國 을 위하여 이 한 몸 奉仕하였다는 大義로 그 모든 것을 COVER하기는 현재로서는 너무나 힘드시는 일이며 또한 이를 모르는 이가 있겠습니까?

어제 저녁에도 집사람과 함께 선생님 생각하느라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은 어떻게 견디셨는지, 생활은 어떻게 꾸려나가시는지 염려하였으며, 잡시람이 저더러 '당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달성하려다 김선생님이 저지경이 되셨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제 군복무도 끝나고 했으니 미치는 힘이 한계가 있겠지만 당신이 할 수 잇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찾아보자'고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 자신이야 주위에서 '수고했다'면서 격려해 주셨고 사건이후 駐韓美軍들과의 접촉이 가능한 부서의 근무를 止揚해 달라는 美側의 요청에 따라 별 수 없이 특수부대에 근무타 目前의 진급을 끝내는 이루지 못하고 온 정열과 피땀을 다 쏟아부었던 32년간의 Uniform 생활을 지난 1월 31일부로 마감하고 집에서 消日하고 있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눈만 뜨면 '내가 어찌하여 이리 되었는고? 누구를,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기에, 그리고 무엇때문에 내가 지금 이자리에 놓여져 있는고?'를 생각할 때마다 원망스러움과 痛恨이 비할데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선생님

참으로 조국을 생각하며 그 조국에 보탬이 되는 일을 자신의 意志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實行할 수 없는 고귀하고도 偉大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과거 危殆하고 어려울 때 조국 수호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班列에 함께 해야 함은 당연한 處事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선생님께서 지난 기간 하신 일들이 국가를 위험에서 求해내셔서가 아니라 선생님의 의지속에는 그러할 경우에도 한 몸 던져 조국의 安危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조국을 사랑하며 강하고 굳은 決意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며, 선생님께서 남기신 足跡이 우리 조국의 큰 밀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결코 제2의 조국인 미국을 背反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조국을 염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미국에 사시는 것을 무척이나 다행으로 여기셨으며, 그것을 몸소 행동으로 옮기신 큰 분입니다. 또한 결코 미국의 國益과 政策에 反하고 큰 손상이 가는 일을 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血盟之間'이니, '兄弟之國'이니, 'vital relation'이니, '한국은 미국 안보의 critical한 友邦國'이나 하는 표현들과 같이 한미간은 소위 '脣齒之國'의 관계요, '따로일 수 없는 영원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고 또 개선발전시켜가야 하는 상황에서 저희가 무엇 때문에 양국에 손해가는 일을 하고자 했겠습니까.

다만 韓半島라는 것이 지구상 '마지막 화약고'라고 일컬어질 만큼 안보상 脆弱하고 또 우리나라는 언제든 外勢의 侵入에 노출되어 있는 風前燈火와 같은 상황에 處해져 있기에 공직자나 국민 모두 할 것 없이 누구나 이에 對處하기 위한 各人各者의 위치에서의 피땀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임이 不問可知의 일이며, 김선생님이나 저 또한 그런 一念으로 本分을 다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국가가 없는 백성은 있어도 백성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즉 국민이 없으면 국가는 성립이 안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또 국민은 국가의 存續을 위하여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一國家를 지칭해서 뭐 합니다만 대사관 근무중 버지니아에 거주하면서 월남인들을 가끔 접해보면 그들의 表情은 참 말로 형옹키 어려웠습니다.

즉 나라잃은 서러움이 바로 얼굴에 나타나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국없는 백성'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을 희망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그들의 자리에 저희가 서 있다고 假定해 보십시오. 戰慄로 몸을 가누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이 땅에 또다시 제2의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기를 감히 허용할 것이며, 天人이 共怒할 KAL기 사건, 아웅산묘소 폭파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蠻行들이 再現되기를 袖手傍觀하고 있을 것이냐'고, 정말로 정말로 다시는 이 땅에 同族相殘의 비극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일도 이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나 저는 바로 이러한 大命題를 直視하고 이에 實踐力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血盟之國'이니, '兄弟之國'이니 하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이 나라에 다시는 그와같은 비극이 招來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安保를 굳건히 하고 적의 危脅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적의 動態를 전략적, 전술적으로 周到綿密히 살피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이나 저나 여기에 속하여져 있어 할 일들을 하고 잇는 사람중 하나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미국 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미국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當然之事입니다만 선생님께서 北韓을 도왔습니까? 아니면 중국이나 러시아를 위해 무슨 得되는 일을 劃策하셨습니까? 태어난 조국에 대하여 그리고 세계평화와 자유수호를 위한 데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同等한 입장에서 행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에 歸化한 수많은 移民들중 자기 조국 생각치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지요. 지연적인 所致가 아니겠습니까만.

이러한 선생님에 대하여 우리 국민 모두는 참으로 훌륭한 분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지금 겪고 계신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선생님에 대하여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저 역시 가능하다면 선생님의 남은 교도소생활을 대신함으로써 痛苦를 조금이라도 덜어들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는 것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軍務에 종사할 때건 민간인 신분이건간에 선생님께 도움이 될만한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어떤 기자가 말하기를 '백대령이 직접 나라에서 알고 있고 정부가 나서서 로버트 김 석방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만 별 의미가 있을게 없습니다. 그러한 표현이야 수천번이라도 할 수 있지만 분위기가 성숙되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 여겨집니다.

금번 한·미 정상회담시에는 어떤 형태로든 말씀이 계실 것으로 언론에서 보도되었습니다만 국가간 懸案問題들이 山積하다보니 또 다음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같이 보여지나 나라에서도 선생님의 苦楚를 덜어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겠나하고 믿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만큼 모든 분들이 선생님의 祖國愛를 높이 평가하고 속히 자유의 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분위기가 造成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들으셨을 것으로 믿습니다만 이스라엘 국적인 볼프강 로쇼부부가 이집트에서 활동하다 이집트 당국에 체포되었으나 이스라엘은 6일전쟁중에 획득한 이집트 포로 5천명과 교환하여 이 부부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다든지, 시리아에서 활동중이던 벨샤울 엘리코헨이 당국에 체포되자 이스라엘정부와 국민 모두는 로마교황,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 그리고 프랑스 드골대통령까지 움직여 그를 구출해 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예를 보게 되면, 물론 선생님은 그러한 사람들과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지만 우리에게 示唆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너무 노여워 마시기 바랍니다. 나라마다 處해진 상황이 다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자세가 各各일 수밖에 없는 점을 勘案할 때 우리도 부정적인 견해만 標榜할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해결의 실마리를 우리식으로라도 찾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위안의 길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왜 다른 나라들은 自國民을 보호하고 또 어려움으로부터 구출키 위해 오만가지 대책을 다 적극적으로 강구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느냐'라는 말을 많이들 하고 있고 저 역시도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만 왜 모르겠습니까?

왜 선생님의 고통을 덜어드리려 노력하지 않으려 하겠습니까? 그렇드라도 이것이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여러가지 복합적인 고려사항들이 있을 것이고 또한 단순하게 잘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되어지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됩니다.

허나 무슨 말로든 위로든 선생님이 현재 겪고 계신 어려움을 대신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그러하기 때문에 더욱 가슴 저며옴을 리할 길이 없는 것이지요.

선생님 그리고 사모님

모든 분들이 선생님의 모습을 우러러보고 있으며, 용기를 잃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큰 위안은 안되시겠지만 안부편지라도 기회 닿는대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좀더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선생님께 도움이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남은 餘生 선생님께 어떤 형태로든 보탬이 되도록 살 것이오며 얼마 안되지만 퇴직금의 일부를 送金하오니 불편해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사모님

그럼 오늘은 이만 不備上書하오며, 늘 건강 잃지 않으시기를 祈願드립니다.

2001년 3월 23일

故國에서 東一內外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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