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40년]혁명서 쿠데타로… 아직 안끝난 역사적 평가

  • 입력 2001년 5월 14일 18시 41분


61년 5월16일 서울시청앞
61년 5월16일 서울시청앞
《16일로 5·16이 발생한 지 꼭 40년이 된다. 1961년 이날 박정희(朴正熙) 육군소장을 비롯한 일단의 군인들은 무력으로 민주당 장면(張勉)정부를 쓰러뜨리고 정권을 잡았다. 이들이 출범시킨 제3공화국은 1979년 10·26 사건으로 막을 내리기 전까지 한국을 거의 완벽히 ‘통치’하면서 우리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의식에 이르기까지 실로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16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역대 정권은 5·16을 어떻게 정의(定義)했으며 당시 거사의 주역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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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그렇듯, 5·16의 성격 규정 역시 시대에 따라 혁명에서 쿠데타로 달라졌다.

혁명이나 쿠데타나 비(非) 정상적 방법으로 정권을 바꾸는 정변(政變)이라는 점에선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혁명은 민심을 얻은 정당성 있는 행위로 인정받는 반면 쿠데타는 정권욕에서 비롯된 그릇된 행위로 간주되는 게 보통이다.

박 전대통령 재임시에는 물론 5·16을 조국의 근대화를 앞당긴 구국의 혁명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을 거쳐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다른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이던 93년 5·16을 혁명도 쿠데타도 아닌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당시만 해도 정치적 동지였던 김종필(金鍾泌)씨를 배려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그는 “박정희는 5·16 쿠데타로 영구집권을 꿈꾸다 부하들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2000년 7월)이라고 속마음을 드러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5·16을 쿠데타로 규정했다. 김종필씨가 국무총리로 있던 1999년의 한 행사에서 “장면 정권이 출범한 지 한달도 안돼 쿠데타 세력이 충무로에서 정권 전복을 모의한 사실이 5·16 혁명사에 들어있다”고 말한 것.

교과서에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교 역사 교과서 ‘5·16 군사정변과 박정희 정부’(205쪽)에는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부 세력이 사회적인 무질서와 혼란을 구실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교사들이 사용하는 한 교육 자료 검색 사이트에도 ‘박정희 소장과 육사 출신 일부 청년 장교들이 군부를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기로 결심했다’는 대목이 있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 교수는 14일 “솔직히 개인적으로 5·16을 혁명이라고 해야 할지, 쿠데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마 정확한 역사적 평가는 김종필씨 등 관련자가 현역에서 물러난 훨씬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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