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금천구 시흥5동 거리에 금천구가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한 ‘한우물길’. 스테인리스 방호울타리가 쳐져 있는 폭 1.2m 인도 옆으로는 소형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행인들은 상가에서 인도 위로 내놓은 물건과 마주 오는 사람들을 피해가며 ‘곡예행보’를 하고 있다.
주민 윤지희씨(29)는 “말로만 ‘걷고 싶은 거리’일뿐 복잡한 상가 거리나 별반 다를 게 없다”며 “비좁은 인도와 많은 차량들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거리’에 가깝다”고 말했다.
거리 입구에 서 있는 2개의 호돌이 석상에 적혀 있는 ‘걷고 싶은 거리’라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다.
▽경위〓금천구는 지난해 4월 서울시에서 5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은행나무 주변 일대를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차량 중심’의 도로문화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꿔보자는 서울시 방침에 따른 것. 이 일대가 조선시대 시흥 관아가 있었던 자리인데다가 수령이 900년된 은행나무가 있는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점도 고려됐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일대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길 만한 상징물은 은행나무 앞에 새로 설치된 조형물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조형물 주변에는 담배꽁초 등 각종 오물들이 널려 있다.
보행자들을 위해 인도를 정비하는 노력도 부족하다. 단지 인도 위에 ‘삭막한’ 스테인리스 펜스만 설치한 것이 전부였다. 최근 ‘걷고 싶은 거리’ 조성 공사가 마무리에 접어든 ‘신촌길’(현대백화점 별관∼신촌민자역사)은 인도를 넓히고 차량의 과속을 막기 위해 차도도 곡선형으로 정비해 놓아 ‘한우물길’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주민들의 반발〓이 지역 주민들은 쾌적한 보행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청측의 당초 ‘공약’이 퇴색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상가 주변 250여m에 걸쳐 설치된 방호울타리는 당초 차량의 무단 주·정차를 막고 보행자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3월 울타리가 설치된 뒤에도 인도 옆 차량들의 불법 주 정차는 여전하고 인도는 상인들의 짐 이동통로가 됐다. 한 상인(54)은 “비좁은 도로에 울타리와 가로수까지 들어서 보행자나 상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왜 이런 곳을 ‘걷고 싶은 거리’로 지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의아해 했다. 이에 대해 금천구 이노근 부구청장은 “워낙 비좁고 낙후된 지역이어서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방호울타리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감사〓금천구 주민 257명이 최근 감사를 요청함에 따라 서울시는 14일부터 이틀간 감사요원 2명을 보내 사업전반에 대한 현지 조사를 벌였다. 현재 시민감사관은 조사기간을 다음달 7일까지 연장, 정밀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은 구청으로부터 7일 받은 예산집행명세서에 집행액이 총 예산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점을 들어 예산 집행과정의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구청장은 “주민에게 공개된 예산명세서는 일부 항목이 누락된 것이며 예산유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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