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안전 지킴이]11년간 등교시간 지켜온 이훈상씨

  • 입력 2001년 5월 21일 18시 49분


영화초등학교 정문앞에 사거리에서 이훈상씨가  어린이들을 안전하게등교하도록 돕고 있다.
영화초등학교 정문앞에 사거리에서 이훈상씨가
어린이들을 안전하게등교하도록 돕고 있다.
택시와 승용차들이 잇따라 지나가고 물건을 가득 실은 화물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간 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줄지어 좁은 사거리를 건넜다. 이어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기다리던 마을버스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18일 오전 8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영희초등학교 정문 앞 사거리. 해맑은 모습의 초등학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지면서 안전 등교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인근에 촘촘히 자리잡은 상가 등으로 인해 편도 1차선인 이 사거리는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 바로 앞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위험해 보였다.

꼬박 11년 동안 이 사거리에서 어린이들의 등교 길을 지켜온 이훈상씨(63·일원1동지역발전협의회 회장)의 표정은 그래서인지 더욱 진지해 보였다.

사거리에는 올 초부터 신호등이 설치됐다. 그러나 영희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오전 8시부터 8시50분까지 사거리의 교통 소통은 이씨의 지휘 에 의해 이뤄진다.

삑삑, 삑….

이씨가 호각을 불며 두 팔을 양 옆으로 들어 올리면 양쪽 횡단보도에 선 녹색 어머니 교통대원 들은 깃발을 내려 차량들을 세운다. 횡단보도는 그제서야 안전한 등교길이 된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와 학부모에게도 이씨의 '교통지휘'는 이제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 운전을 하는 인근 주민들도 이씨의 신호에 익숙해져 있다.

이씨가 없었다면 학교에 가는 학생들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도 모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70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동네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 해 왔습니다. 많은 일 중에서도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등교시키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겠어요? "

이 곳 토박이인 이씨는 90년 영희초등학교가 이 지역으로 이전한 뒤 매일 아침마다 교통안전지도를 맡아 왔다. 그래서 주변에서 이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씨는 "가끔 성질 급한 운전자들이 짧은 주행 신호에 불만을 표시하지요"라며 "하지만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 위해서 우리 어른들이 참고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오전 8시45분경. 교문 안쪽에 서서 아이들의 등교를 지도하던 당직 교사가 학교 정문을 닫으면서 이날의 '등교 전쟁'도 무사히 끝이 났다.

만 11년간 이어져 온 무사고 등교 기록에 하루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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