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청운초등학교 운동장. 3학년 4반 학생들이 피구게임을 하고 있었다.
즐겁게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공을 피해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 수현이(가명·9·여)는 엉뚱하게 공을 쫓아다닌다. 수현이는 청각장애 1급에 자폐증상을 보이는 중증장애 학생. 단짝 친구 예슬이가 잽싸게 달려가 수현이에게 큰 소리로 손발짓을 섞어 설명하지만 수현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이번엔 미진이가 다가와 서툰 수화로 설명해준다. 친구들의 거듭된 설명에 겨우 게임규칙을 이해한 수현이는 엷은 미소로 고마움을 전한다.
청운초등학교는 지난달 28일부터 일주일간 장애인 학교인 서울선희학교와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선희학교 청각장애 어린이 50명이 한 반에 2∼3명씩 나뉘어 청운초등생과 합반수업을 받는 것.
이 학교는 올해로 통합교육 6년째를 맞이했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는 게 통합교육의 가장 큰 효과. 6학년 이수아양(12)은 “처음에는 듣지 못하니까 공부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는 줄 알았는데요…. 이제는 장애인도 우리랑 똑같다는 것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6학년 담임 김명자(金明子) 교사는 “아이들은 적응이 더 빠른 것 같다”면서 “처음은 서먹해하던 아이들도 일단 친해지면 상대가 장애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교육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청운초등학교 하조소(河兆昭) 교장은 “통합교육은 장애우(友)에게는 자신감을, 비장애우에게는 분발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김창원기자>changkim@donga.com
▼부산맹학교 중고생61명 '점자가이드북' 들고 수학여행▼
“이런 생생한 느낌은 처음입니다. 아무 것도 볼 수는 없지만 보는 것 이상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점자 여행가이드북’을 들고 2박3일간의 수학여행에 나선 시각장애인 학교인 부산맹학교 중고등부 학생 61명. 이들은 1일 경기 여주군 도자기체험장에서 일반인과 다름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도자기 빚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생대표인 윤광식(尹光植·19)군은 “이곳에 오기 전 점자 가이드북을 통해 도자기 빚는 법을 익혔다”며 “여주 도자기의 특징과 유래, 제작과정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날 점자 가이드북을 옆에 꼭 끼고 경기 용인시의 에버랜드를 찾은 정미진(鄭美眞·28·고3)씨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데 가이드북이 여행의 생동감을 더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여행 코스는 문경새재∼TV드라마‘왕건’ 세트장∼에버랜드∼여주도자기 체험장∼독립기념관.
이들의 여행기간 내내 길잡이 역할을 해온 점자 가이드북은 부산의 테마여행 전문업체인 ㈜태평양고속관광과 참투어닷컴이 부산맹인점자도서관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두 여행사는 당초 사회봉사 차원에서 무료 수학여행을 제의했으나 학교측이 다른 일반 학교 학생들과 똑같이 대해 달라고 하자 이처럼 귀중한 ‘선물’을 마련하게 됐다.
‘참 좋은 사람들과 참 좋은 여행을…’이라는 제목의 가이드북은 50쪽 분량. 어느 학부모가 쓴 ‘너희들만의 여행을 떠나보내며’라는 편지에는 입으로 휠체어를 끌며 8개월여 만에 미국 대륙을 횡단한 최장현씨(36)와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시각장애인 에릭 베이헌메이어(32)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부산〓조용휘기자>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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