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서 공부하는 게 부끄럽고 학원에서 더 잘 가르쳐줘요. 보충수업반 정원이 20명인데 가보면 1, 2명밖에 없어요.”
21세기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기 위해 지난해 초등학교 1, 2학년을 시작으로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은 중앙 정부가 지출하는 예산만 8조3668억원인 ‘대형 국책사업’이다. 하지만 준비 부족과 일선교사들의 ‘저항’으로 좌초 위기에 놓였다.
지난주 동아일보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4450여개 중고교 중 1903개교의 교육과정 담당 부장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차 교육과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가 중학교 76.9%, 고교 84.8%에 이르렀다.
중학교 교사 58.3%와 고교 교사의 74.3%는 “시행 시기를 늦추고 문제점을 보완해 시행해야 한다”며 ‘시행 유보’를 주장했다. 폐지 요구 비율은 각각 16.5%, 15.7%였다. 이 때문에 7차 교육과정이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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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과정의 핵심인 수준별 교육과 재이수반은 파행 운영되고 있다. 올해부터 새 교육과정에 들어간 중학교 1학년의 경우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수준별 수업’에 대해 대다수의 학교(63.2%)는 형식만 갖추었을 뿐 예전과 다름없이 수업하고 있었다. 수학과 영어 부진 학생을 별도로 지도하기 위한 재이수반을 두고 있는 학교도 절반에 불과했다.
내년부터 1학년에게 새 교육과정을 시행해야 하는 고교도 ‘7차 교육과정을 잘 안다’ 8.4%, ‘도입준비가 돼 있다’ 1.4%에 불과했다.
절대다수의 교사들은 수준별 수업 취지는 좋으나 적용이 어렵고 고교 2∼3학년의 과목 선택제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응답했다.
교총의 조흥순(曺興純) 정책연구부장은 “큰 틀은 좋으나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교사들의 사기가 낮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7차 교육과정이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계단식’으로 공부한다. 과거에는 초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의 일부를 중학교에서 다시 배웠으나 중복학습이 사라졌다. 학년마다 배운 것을 이해해야 다음 학습이 순조롭다. 또 모든 학생을 한 교실에서 획일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수준별로 개별 교육한다. 고교에서는 이과와 문과의 구분이 사라지고 2학년부터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교육설계도’는 54년 1차가 시작돼 10년 단위로 변해왔으나 80년대부터 5년마다 개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