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자는 것은 단지 '노는 날' 을 늘리자는 주장이 아니다. 국경일의 근본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국경일이 무엇인가.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념하자는 것이다. 한글날 만큼 전 민족적으로 기념할 만한 날이 또 어디 있는가.
정부는 개천절, 3·1절, 광복절, 제헌절 등 현재의 4대 국경일만 국권 회복이나 독립과 관련되는 날이고 한글날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정말 한글날이 4대 국경일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한글이 없었다면 3·1절이나 광복절이 가능했다고 보는지 묻고 싶다. 식민지시대 일제는 '조선인의 혼' 이 담긴 한글을 없애지 않고는 '황국신민화' 를 획책할 수 없다고 보고 우리말과 한글을 못쓰게 했다.
민족사학자 박은식 선생은 "민족이란 혼(魂)과 백(魄)으로 이루어졌으니 '백' (영토, 주권)은 잠시 없어지더라도 '혼' 이 살아있으면 민족은 되살아난다" 고 하였다. 우리 민족의 '혼' 을 집약해 담고 있는 것이 바로 한글이다. 한글날을 민족의 독립과 무관하다거나 간접적으로만 관계가 있다고 본다면 이는 무지의 소치이다. 한민족은 15세기 중엽에 한글 창제로 명실상부한 문화적 독립을 선언한 자랑스런 민족인 것이다.
이렇듯 민족의 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한글을 더 이상 홀대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의 세찬 격랑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이 날로 흐려지는 작금에는 더욱 그렇다. 이렇듯 귀하고 보배로운 한글을 국가적 차원에서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에서도 한글 창제의 날을 국경일로 삼아야 한다. 세계의 여러 문자 가운데 한글만이 창제자와 창제 반포된 날짜가 정확히 알려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국경일로 제정할 이유는 충분하다.
국경일의 개념도 세상이 변하고 국민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거기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담당 관리 몇 사람의 자의적 견해로 국경일의 개념을 고착시켜서는 안 된다.
윤경로(한성대 교수·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