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마찰-분쟁 툭하면 법정으로

  • 입력 2001년 7월 2일 19시 09분


약간의 상식과 상대에 대한 배려만 있다면 쉽게 풀릴 일들이 큰 분쟁으로 번지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좀처럼 보기 어렵고 극한적인 감정대립이 판을 친다.

대화로 해결가능한 사소한 분쟁을 법정으로까지 끌고 가는 일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웃간의 분쟁〓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의 위아래 층에 사는 윤모씨(42)와 박모씨(48)는 1년 전부터 원수처럼 지내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위층 윤씨 집에서 시작한 마루 보수공사. 아래층의 박씨는 공사 때문에 자신의 집 벽에 금이 갔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윤씨는 증거가 있느냐고 따졌다.

서로 욕설을 하는 등 감정의 골은 깊어졌고 급기야 멱살잡이까지 벌어졌다. 결국 박씨는 윤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윤씨는 박씨가 폭력을 휘둘렀다며 형사고발했다.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금이 간 상태나 인과관계의 조사 없이 무조건 윗집의 공사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공사를 할 때 양해조차 구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며 서로 이해하지 않는 태도를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27일 전북 전주에서는 부부싸움으로 시끄럽다며 엉뚱한 사람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다세대주택 2층에 사는 이모씨(30)는 평소 자신의 집 위층에서 부부싸움을 자주 해 잠을 방해한다며 불만을 갖고 있다가 이날은 다른 집에서 부부싸움을 했는데도 다짜고짜 흉기를 들고 위층 집으로 뛰어든 것. 이씨는 위층 부부와 얘기할 생각도 하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

▽각박한 인심〓올해 초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 톨게이트 부근에서 C씨의 승용차가 앞서 가던 D씨의 승용차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파손 부분도 적고 D씨도 별다른 부상이 없다고 해 명함을 주고받은 뒤 헤어졌다. 하지만 며칠 뒤 C씨는 “뒷좌석에 있던 개가 유산을 했으니 보상금으로 800만원을 달라”는 D씨의 전화를 받았다. 몇 번의 만남에서도 양보가 없던 두 사람은 법정에서 만나야 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보증금 1000만원짜리 방에 살던 J씨(20·여)는 집을 옮기려고 집주인 L씨(70)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 L씨는 밀린 월세 200만원과 이에 대한 이자 20만원을 뺀 780만원을 J씨에게 줬다. 밀린 월세에 이자를 붙인 것을 두고 다툼을 벌이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고소하는 사태까지 갔다.

▽소액사건 급증〓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지난 10년간 법원의 소액사건은 크게 늘었다. 90년 소액사건(소송물가액 500만원 이하)은 17만1869건이었으나 5년 만인 95년(1000만원 이하) 34만9825건으로 2배 이상 늘었고 99년(2000만원 이하)엔 67만487건으로 4배 가량 증가했다.

서울지방법원 모판사는 “전체 소액사건 중 개인 대 개인의 소액사건 비율이 30% 가량을 차지하는데 당사자들이 서로 조금만 양보한다면 법정까지 올 필요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각박한 요즘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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