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600여명이 참가한 이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조선족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이들은 집회 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까지 행진하면서 “조선족 동포를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우리 동포로 봐달라”며 정부의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또 이와 별도로 99년부터 불법체류 조선족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온 서울조선족교회의 서경석(徐京錫) 목사는 지난달 21일부터 이날까지 15일째 조선족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18일부터 열흘간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1700여명을 적발해 강제 추방했으며 이중 조선족은 약 300여명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지만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혀 강제추방의 두려움에 떠는 조선족. 이들을 단속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도개선을 통해 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조선족 실태〓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인 유석씨는 95년 6만위안(약 900만원)을 빌려 브로커에게 주고 한국에 왔지만 다음해 11월 불시 검문에 걸려 강제 추방됐다. 빌린 돈의 이자마저 갚을 길이 없자 유씨는 98년 이름을 바꾸고 1000여만원의 빚을 내 다시 한국에 왔다. 하지만 언제 적발돼 중국으로 보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유씨 같은 불법체류 조선족은 5월말 현재 6만700여명.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밀입국자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15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법적으로 우리 동포가 아닌 이들은 산업연수생 및 친척방문을 제외하곤 체류 90일이 지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쿼터제인 산업연수생으로 올 수 있는 사람은 1년에 많아야 6000여명.
게다가 산업연수생으로 오든 밀입국을 하든 한국에 오기 위해 1인당 평균 7만위안(약 1000만원)을 알선료로 쓴다. 이는 중국에서는 공공연히 통하는 공식 가격. 대부분 빚을 내서 마련한다. 그러나 곧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기 때문에 돈을 벌기는커녕 빚을 갚기도 전에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 따라서 고용주들의 횡포와 비인간적인 대우도 아무 말 못하고 참아내야 한다.
▽조선족의 불만과 요구〓지난해 12월 한국에 온 조선족 박성희씨(66·여)는 “대통령께서는 인권을 위해 헌신했다고 노벨평화상까지 타셨는데 어떻게 우리 조선족을 같은 동포로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냐”고 탄식했다.
이들은 할아버지의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마저 박탈하겠다면 돈이라도 벌게 해 달라고 주장한다. 동포로 취급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특혜는 줄 수 있지 않느냐는 것.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대표 송월주·宋月珠)의 김현동(金鉉東) 재외동포사업국장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올 때 낸 1000만원을 갚고 약간의 돈을 모을 수 있는 기간인 4년 정도 까지는 추방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답은 단호하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관계자는 “법적으로 외국인인 조선족에게만 특혜를 준다면 다른 외국인 체류자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안은 없는가〓5일 열린 집회에서 서경석 목사는 조선족에 대한 쿼터를 3만명 정도로 대폭 확대하고 불법체류자들은 강제추방하지 않는 대신 체류연한에 따른 순차적 출국을 보장해서 자진 신고케 해 관리하자고 제안했다.
서 목사는 “같은 민족인 조선족에 대해선 지금보다 문호를 더 개방해야 한다”며 “이들은 우리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며 나아가 북한에 가서 남한의 선전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과연 조선족들이 자진신고를 할지 의문이며, 체류를 합법화한다면 중국 조선족 사회에 대이동이 일어나 사회붕괴 우려가 있고 또 이들의 대량 유입은 우리 노동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