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옥임 할머니(84). 이날 그의 마지막 길은 친지 등 10여명만이 지켜보고 있었다. 황씨는 19세에 일본 경찰에 끌려가 중국 등지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해방 직후 고향인 경남 거창에 돌아와 일본 규슈(九州) 탄광에서 돌아온 남편 김태웅씨(98년 사망)와 1948년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는 못했다.
남편이 숨진 뒤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경기 광주시의 ‘나눔의 집’에서 다른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했다. 중풍으로 기동이 불편하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데다 눈까지 나빠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던 황씨는 99년 시동생 김성곤씨(78·서울 강남구 역삼동)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지난해부터 1년여 동안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 노인복지회관에서 지냈다.
김씨는 “형수가 몇 달 전 아직 정신이 또렷했을 때 ‘일생이 망가진 채 자식도 없이 세상을 떠난다. 묘에 비석이나 하나 세워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정대협의 안미강 총무는 “현재 살아 있는 140명의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아무도 모른다”며 “이분들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 치료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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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쓸쓸한 영결식' 기사에서 '경기 광주의 나눔의 집' 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독립된 법인이며 정식 명칭은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