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청소년 성매매 처벌범위 법적잣대 논란

  • 입력 2001년 7월 11일 18시 40분


《‘이 사건은 이성간의 만남 속에 이뤄진 자유로운 성관계로 보인다. 호의로 쥐어준 용돈을 성매매의 대가로 단정할 수 없다.’9일 법원이 15세 가출소녀 A양과 성관계를 맺고 2000∼1만4000원을 준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 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여성단체들이 집단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증폭되는 논란〓판결을 내린 서울지법 윤남근(尹南根) 판사는 “윤리적인 비난과 형사처벌은 다른 문제”라며 “유죄를 인정한 법적 요건이 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또 성관계의 대가성을 너무 폭넓게 인정할 경우 사생활과 애정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 윤 판사는 지금까지 ‘청소년 성매매’ 사범에 대해 최고 벌금 1000만원까지 선고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지켜왔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더욱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시민, 여성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서울YMCA와 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15개 단체는 11일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가출해 갈 곳도 없었던 A양이 성 노리갯감으로 이용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관행에 따른 편협한 법률해석”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의원도 즉각 대법원장에게 질의서를 보내 “성에 대한 자기결정력이 약한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입법취지를 무시했으며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도 어긋나는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배경〓이 같은 논란은 결국 청소년 보호와 사생활의 자유,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법적 안정성 사이의 충돌로 볼 수 있다.

형법상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 대가성이나 동의 여부를 떠나 무조건 처벌하도록 돼 있다. 13∼18세 청소년은 동의가 있었다고 해도 ‘청소년 성매매’일 경우 특별법에 따라 형사처벌된다. 따라서 문제의 사건은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명숙 변호사는 “오갈데 없는 가출 청소년에게 잠자리를 제공한 것은 대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상급심 판결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A양은 “심심하고 할 일도 없던 차에 단순한 호기심에서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초기 진술과 달리 검찰에서는 “잠자리를 제공받는 대가였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나라 사례〓비교적 성관계가 자유로운 나라에서도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는 오히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제한하는 법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 텍사스주법원은 최근 15세 소녀와 동의 하에 성관계를 맺은 B씨(32) 등 14명에 대해 ‘성범죄자’ 경고문을 집과 차에 부착하도록 하는 현대판 ‘주홍글씨’ 형벌 등을 내렸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명예훼손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ABC뉴스가 최근 전세계 네티즌 1만2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7%가 이 판결을 옹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과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은 16세 미만 미성년자와의 성관계인 경우 사전동의가 있더라도 형사처벌하고 있으며 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18세 미만 청소년과의 성행위에 대해 같은 이유로 처벌하게 돼 있다.

대가성이 있는 성매매의 경우 처벌은 더 엄격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 법원이 태국에서 11세 소녀와 성관계를 맺고 3000원 가량을 건넨 48세 남성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암농 세무이’ 사건. ‘원조교제의 원조’로 불리는 일본과 다른 나라에서도 청소년 성매매에 대해서는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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