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폭우로 사망자 11명, 부상자 6명이 발생했고 2306가구가 물에 잠기고 차량 171대가 부서진 서울 관악구 신림6, 10동 일대. 비가 그친 지 하루가 지났어도 수마(水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신발 가재도구 벽돌 등이 흙탕물과 엉켜 곳곳에 쌓여 있었다. 아직 끌어내지 못한 차는 오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였다. 주민들은 손때 묻은 헌 가구 등을 내다 말리며 한숨을 쉬었다.
▽세금 내기 싫다〓15일 밤 신림6동 주민 50여명은 동사무소 앞에서 밤 11시경까지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15일 오전 3시반부터 물이 차오르자 구청과 동사무소에 구호를 요청하는 전화를 했으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림6동 주민자치위원회 신석택 위원장(53)은 “신림10동 밤골 고양교회 앞 하수도를 물에 떠내려온 차량이 막아 피해가 커졌다”며 “서울시와 구청은 수방대책에 만전을 기한다는 공염불만 되뇌었다”고 비난했다.
일부 주민들은 “구청장이 순시를 나와 피해를 살피고 보상대책을 논의하기는커녕 주민들에게 이름만 알리고 갔다”고 말했다.
▽하나라도 더 건지자〓동사무소, 교회 등지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이재민들은 16일 동이 트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피해 복구에 나섰다. 신림6동 시장 상인 정영선씨(50)는 가게 앞에서 정가 2000원짜리 스타킹을 500원에 팔고 있었다. 완전히 젖지는 않았지만 흙탕물이 조금이라도 묻어 팔 수 없게 된 내의들을 원가 이하로 내놓았다. 정씨는 “비싼 옷은 세탁하려 했지만 인근 빨래방이 만원이어서 노량진이나 과천까지 찾아갔다”고 말했다.
신림10동 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용준씨(66)는 공터에서 전자제품 등 가재도구를 내놓고 햇볕에 말렸다. 김씨는 “당장 사용해야 할 물건부터 말리고 있지만 모두 복구하려면 한달은 걸릴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쓰레기도 고민〓서울에서 발생한 ‘침수 쓰레기’는 모두 1만7661t. 11t 트럭 기준으로 1600대분이다. 서울시는 평소 쓰레기 배출량의 수십배에 해당하는 물량이어서 기존 쓰레기 적환장 49곳 외에 동대문 중랑 노원 관악구 등 9곳에 1만여평 규모의 임시 적환장을 설치해 처리할 계획. 하지만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침수 쓰레기 반입을 16일 오후 6시까지 중단시킨데다 앞으로 비가 더 오면 반입 중단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어 쓰레기 처리에 상당 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지하철 7호선 17일오전 재개▼
집중호우로 지하철로가 물에 잠기면서 15일 중단된 서울지하철 7호선 고속터미널역∼청담역간 운행이 이르면 17일 오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16일 “고속터미널역 지하에 차 있는 빗물을 빼내는 과정에서 예상 외로 어려움이 많아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며 “빨라도 17일 오전이 돼야 원상 복구될 것”이라고 밝혔다.
침수 피해 첫날인 15일 최고 수위가 270㎝까지 됐던 고속터미널역의 경우 밤샘 복구작업에도 16일 오후까지 수위가 200㎝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재해대책본부측은 “침수 구간의 환기구 주변에 16대의 양수기를 설치해 물을 빼고 있지만 환기구 통로의 굴곡이 심해 양수기의 작업능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54명 사망 실종 3만8563가구 침수▼
중앙재해대책본부는 14일 밤부터 15일 새벽 사이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4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으며 168억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16일 밝혔다.
인명피해는 서울 28명, 인천 4명, 경기 22명이고 재산피해는 서울 36억원, 경기 111억원, 강원 14억원, 경북 5억원 등이다. 또 주택의 경우 3만8563채가 침수되고 145채가 파손됐으며 가축 3만4900마리가 폐사하고 차량 456대가 침수 피해를 보았다.
대책본부는 이와 함께 이번 집중호우 때 19명이 감전사고로 숨진 것과 관련해 △낮게 설치된 안정기를 일제 조사해 지형에 따라 지상 50㎝ 이상으로 이전 설치하고 △노후한 가로등의 시설과 케이블 등을 교체하기로 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