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군부, 신문기사 16% 삭제…이민규 교수 분석

  • 입력 2001년 7월 20일 18시 58분


1980년대 초반 신군부의 혹독한 언론검열에 맞서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사가 나름대로 눈물겨운 항거를 했던 역사적 기록들이 20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이민규(李珉奎·41) 교수는 1979년 10월27일부터 81년 1월24일까지 계엄사 보도검열단이 신문 방송 통신 잡지 등 27만8361건의 기사를 검열한 자료를 최초로 입수, 분석한 논문을 다음달 초 이 대학에서 발간하는 ‘사회과학연구 제7호’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따르면 신문은 모두 7만344건의 기사를 검열 받아 1만1489건이 부분 또는 전면 삭제돼 16.3%의 삭제율을 보였다. 방송은 6만129건 중 7015건, 통신은 11만7079건 중 6891건, 잡지는 2만1825건 중 1279건이 삭제돼 각각 11.7%, 5.9%, 5.8%의 삭제율을 기록했다.

이 교수가 논문에서 밝힌 사례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79년 12월10일 재야인사 해금조치에 따라 김대중(金大中)씨의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를 단독 인터뷰한 기사를 게재하려 했으나 검열에서 전면 삭제됐다.

조선일보는 그해 12월9일 부마사태 당시의 상황을 르포 형식으로 보도하려 했으나 삭제됐다. 중앙일보는 80년 5월 강원 정선 주재기자가 사북사태를 취재하다 계엄사의 합동수사반원에 의해 집단구타 당한 사실을 보도하려다가 삭제되자 그 부분을 공백으로 둔 채 ‘백지신문’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특히 신문은 담당 검열관이 그 의미를 손쉽게 파악하기 힘든 만화 만평 독자투고 기획특집면 등을 통해 은유적인 항거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동아일보가 79년 11월22일 보도한 소설가 박경리(朴景利)씨의 인터뷰 기사. 이 기사는 박씨의 소설 ‘토지’(土地) 3부 완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제목과 부제목을 각각 ‘글 쓴다는 것은 고통과 마주 서는 일’ ‘불우할 때 좌절하지 않고 넉넉할 때 오만하지 말자’로 뽑아 시대의 아픔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박씨는 인터뷰 도중 신군부의 기피인물이었던 자신의 사위 김지하(金芝河) 시인에 대해 언급하고 목각으로 판 김씨의 얼굴을 자신의 앞에 놔두기도 했는데 동아일보는 이를 크게 부각시켰다.

이 기사가 나간 뒤 계엄사 검열반에서 박씨 인터뷰와 같은 유형의 기사에 대비한 대책을 세울 정도였다.

이 교수는 “당시 언론검열은 비판성향이 강한 신문이나 잡지 등 인쇄매체를 중심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며 “언론이 어두운 시대상황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뇌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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