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도 없는 유치장화장실 30대여성 1년 법정투쟁 결실

  • 입력 2001년 7월 20일 19시 17분


차단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용변을 볼 때마다 외부에 노출되고 악취가 그대로 전달되는 경찰서 유치장의 화장실. 이러한 유치장 화장실 시설과 관리는 국민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이 결정에 따라 수십년 동안 미결수 구금자들에게 수치심과 불편을 안겨준 전국 220여개 경찰서의 유치장 화장실은 전면적인 개선이 불가피해졌다.

이 결정은 시위현장을 지나가다 경찰에 연행된 뒤 유치장에서 용변을 본 경험이 있는 한 평범한 시민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산물이다.

▽한 시민의 인권 되찾기〓송모씨(32·여·임상병리사)는 지난해 6월 18일 오전 2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서울 구로구 H사 노조원들의 시위현장을 지나다 영등포경찰서에 연행됐다.

송씨는 H사 노조원들의 시위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유치장에 구금됐다.

5평 정도의 유치장에는 여자 미결수 7, 8명이 함께 수용돼 있었고 위층에는 남자 유치장이 있었다. 유치장 구석에는 용변을 보는 곳이 있었는데 화장‘실(室)’이라기보다는 ‘용변기’에 불과했다. 60㎝ 정도 높이의 칸막이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국-박 안먹기’ 운동도▼

송씨는 “옷을 내릴 때는 남자 유치장의 ‘보호관’이 정면으로 보였고 쪼그려 앉은 뒤에도 다른 사람의 얼굴과 그대로 마주쳤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큰 일’을 볼 때는 악취가 그대로 전달됐다.

송씨는 “함께 연행된 친구는 수치심 때문에 석방될 때까지 이틀동안 용변을 참았다”며 “대소변 때문에 유치장 내에서 ‘밥과 국 안먹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연행 48시간 만인 20일 새벽 석방됐으나 유치장에서 겪은 불편과 수치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송씨는 동네 청년회 모임에 나가 이 일을 이야기했고 청년회의 주선으로 변호사를 만나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 위헌결정〓헌재는 19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송씨 등은 신체부위가 노출되는 상황에서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고 생리적 욕구까지도 억제해야 했으며 다른 미결수가 용변을 볼 때는 불쾌감과 역겨움을 감내해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강요한 경찰의 행위는 비인도적 굴욕적이어서 헌법 10조가 규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인도적 고려에 따른 최소한의 시설기준을 갖추어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 화장실 개선방침〓경찰청은 이날 헌재 결정과 관련해 전국의 모든 유치장 내 화장실 시설을 보완중이라고 20일 밝혔다.

▼전국 220곳 개선 불가피▼

경찰은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난해 8월부터 유치장 내 화장실 개선작업을 벌여 지금까지 전국 229개 유치장 내 화장실 중 208곳의 칸막이를 평균 30∼40㎝ 가량 높이고 재래식 변기도 상당수 수세식 변기로 바꿨다”고 밝혔다.

경찰은 2004년까지 전국의 모든 유치장 내 화장실을 수세식 좌변기로 교체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그러나 일반 화장실과 똑같이 바꿀 경우 유치인들이 화장실 내에서 자해나 자살을 할 수도 있다”며 “유치인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하면서도 이들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는 수준에서 화장실 시설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형·최호원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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