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인 막내외아들(35)과 함께 살고 있는 홀어머니 A씨(79)는 98년 출가한 네 딸에게 “아들의 혼수자금을 마련해야 하니 빌려준 2500만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딸들은 “학교도 제대로 못보내준 어머니가 우리의 생계를 위해 보태준 돈까지 돌려받으려 하느냐”며 반발했다.
아들만 편애해온 어머니 밑에서 숨을 죽인 채 살아온 딸들의 감정은 골이 깊었다.
돈 문제를 둘러싼 어머니와 딸자식들간의 다툼은 곧 주먹다짐으로 이어졌고 아들과 딸, 어머니는 모두 폭력혐의로 기소돼 벌금형까지 선고받았다.
딸들은 어머니와 남동생을 상대로 치료비 청구소송을 내는 등 ‘전쟁’을 선포했고 A씨 역시 대여금 반환 및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반격에 나섰다.
사건을 맡은 대구지법 강민구(姜玟求) 부장판사는 지난달 합의를 시키기 위해 양측을 불렀다. 그리고는 “마음을 좀 가라앉히라”며 음악부터 틀었다.
불효자의 애끓는 탄식을 노래한 ‘회심곡’ 등이 흘러나왔다. 법정에서 서로 눈을 흘기고 욕설을 주고받던 딸들과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먼 산만 바라보던 외아들도 고개를 떨궜다. 남아선호사상과 효(孝) 등에 대한 재판부의 의견과 설득이 이어졌다.
음악이 3년간의 얽힌 감정을 풀어내는데는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딸들은 원금을 돌려주는데 합의했고 A씨는 위자료와 치료비 등을 모두 포기했다. 그 자리에서 조정문에 서명한 이 가족은 조용히 함께 법원을 떠났다.
강 부장판사는 “혈육간의 소송은 합의나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법원이 충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며 “음악이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확인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