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과 포목상, 버스업체 운영으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강태원(康泰元·82·경기 용인시 기흥읍)씨는 충북 청원군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에 1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증했다. 꽃동네 오웅진(吳雄鎭·56) 신부는 “이렇게 많은 돈을 기증 받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23일 오후 자택에서 강씨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1024의4 대지 1480㎡, 지하 3층 지상 8층 연면적 6973㎡의 땅과 건물 등기부등본을 오 신부에게 미련없이 건넸다.
부인 한순자(韓順子·70)씨와 큰딸 강영숙(康榮淑·45)씨도 자리를 같이했다. 폐가 굳어지는 병을 앓고 있는 강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자의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지만 오 신부의 권유로 말문을 열었다.
평양이 고향인 강씨는 광복 때 혼자 월남해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강씨는 “끼니를 굶고 잠을 아껴 돈을 벌었지만 허튼 데는 한푼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포목상을 시작했고 다시 서울에서 버스회사를 운영했다.
강씨는 구두쇠 아버지였다. 5남매가 대학공부를 마치고 결혼할 때 집 한칸씩 장만해준 게 전부였다.
강씨의 신념 밑바탕엔 선대(先代)의 가르침이 있었다.
“아버님은 평양의 지주였지만 제가 어릴 때부터 자식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서운했지만 결국 그 가르침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입니다.”
딸 영숙씨는 “자라면서 단 한번도 부잣집 자식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며 “평소 신념대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신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난해부터 재산을 기증할 곳을 물색하기 위해 전국의 양로원과 보육원, 사회복지시설을 둘러보고 다녔다.
그러다 올해 초 꽃동네에서 오 신부를 만나 그의 소탈함과 서민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강씨는 이후 꽃동네를 서너 차례 더 찾아가 혼자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강씨는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오 신부의 모습에 감동했고 이곳에 재산을 맡기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주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최근 평택에 있는 1만4000평의 농장도 서울의 한 교회에 기증했다.
오 신부는 “고맙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귀한 정성을 받아들인다”며 “현재 추진 중인 현도사회복지대학 대학원 설립과 가평 꽃동네 연수시설을 짓는 데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인〓남경현기자>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