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결의문으로 본 '법치 후퇴' 사례

  • 입력 2001년 7월 24일 18시 48분


대한변호사협회가 23일 발표한 ‘법치주의 후퇴’에 대한 비판 결의문에는 법치주의가 어떻게, 왜 훼손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는 셈이다.

정재헌(鄭在憲)회장 등 변협 집행부는 결의문 발표에 따른 파문이 큰 탓인지 24일에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변호사들이 결의문 내용에 공감을 표시하는 것은 변호사들 스스로 체감하는 ‘공통적인 각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 변호사는 설명했다. 변호사들이 지적하는 문제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입법 과정의 문제점〓법조인들은 가장 먼저 각종 법률의 제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이 법은 채권 금융기관에 부실기업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6월초부터 입법이 추진됐는데 변호사단체들은 ‘기업 도산에 대한 사법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변호사단체가 법 자체보다 더 심각하게 보는 것은 입법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다. 서울변호사회의 한 간부는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전문가 단체인 변호사단체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중견변호사는 “법치주의는 절차적 정당성을 생명으로 하는데 정부가 입법 과정에서 이를 무시함으로써 법조인들의 반발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변호사와 변호사단체의 생존문제〓규제개혁위원회가 추진하는 변호사단체의 복수 허용 문제는 변호사회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생존의 위기감까지 불러일으켰다. 이 방안은 대한변협과 각 지방변호사회의 복수 설립을 가능케 하고 변호사들의 가입을 자유롭게 하며 변호사 등록권과 징계권을 법무부가 환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

규개위는 변호사도 사업자이고 변협은 사업자 단체라는 시각에서 이를 추진해왔는데 변호사들은 자신들을 ‘장사꾼’으로만 인식하고 변호사의 공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 방안이 관철되면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반발해왔다.

변호사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모 변호사는 “새 정권 들어 개인 변호사들이 내는 세금이 지난 정권 때보다 50% 가량 늘어난 것 같다”며 “변호사들끼리 모여 앉으면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이견과 반론〓일부 변호사들은 변협에 대해 자성과 내부 비판을 촉구했다. 한 중견 변호사는 “최근 들어 변협이 인권과 사회 정의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발언을 했느냐”며 “변호사 자신의 계층적 이해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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