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사고장면을 처음 목격한 진주시 판문동 중촌마을 김모씨(64)는 “밭일을 하고 있는데 고속도로 쪽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쳐다보니 뽀얀 먼지가 일어나면서 버스는 형체마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50대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차 밖으로 나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며 “일부 승객은 떨어질 때 이미 차량 밖으로 튕겨나온 상태였다”고 참상을 전했다.
사고직후 현장에 있었던 권석호씨(44)는 “사고버스는 고속도로에서 13m 아래 농로로 바로 떨어진 때문인지 언덕을 구른 흔적은 없었다”며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차량이 완전히 부서져 번호판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고속도로변의 가드레일과 전신주 1개도 박살이 났다. 버스는 운전석보다는 반대편쪽이 크게 부서진 상태였다.
▽사고 원인〓사고버스가 무인속도측정기를 바로 눈앞에 두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도로에는 50m가량의 긴 스키드 마크가 선명했다.
경찰은 “스키드 마크의 길이를 감안할 때 버스의 속도가 시속 120㎞는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과속으로 달리다 무인속도측정기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는 바람에 차체가 중심을 잃어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버스 승객들은 3년 전 부산 동구 좌천동과 범일동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C산악회 회원과 일반 관광객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서 출발, 거창 수승대 등지에서 야유회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자는 아파트 경비원과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생사 가른 안전띠〓승객 가운데 안전띠를 맸던 사람들은 대부분 생명을 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차량 운전석 반대편 앞자리에 안전띠를 매고 앉아있다가 오른팔에만 부상을 입은 김의삼씨(71)는 “사고가 날 무렵 상당수 승객들이 일어나 복도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있었다”고 사고당시 상황을 전했다.
버스 뒤쪽에 앉았던 배춘선씨(61·여·울산 중구 복산동)는 “승객의 절반 가량이 안전띠를 매지않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여자승객 일부는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갑자기 ‘끽’하는 제동소리와 함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공중에 떴다가 추락했다”고 말했다. 진주 한일병원에 입원중인 고성애씨(61·여·부산 사상구 감전1동)도 “승객 중 술을 마신 사람도 많았다”며 “버스가 달리는 중 일어서서 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경찰 관계자는 “안전띠를 맸던 사람들은 대부분 목숨을 건진 것으로 나타나 ‘안전띠는 생명띠’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고 밝혔다.
▽병원〓사망자 6명과 중상자 9명이 후송된 진주 경상대병원 응급실은 퇴근했던 의료진들이 긴급 소집돼 진료에 나섰으나 부상정도가 심한 환자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다.
응급실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가운데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했으며 의료진은 “부상 정도가 너무 심해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경남 진주시는 이날 사고가 발생한 직후 시청 3층 대회의실에 대책상황실을 설치하고 백승두(白承斗) 시장의 지휘로 승객 인적사항 파악과 유류품 정리, 가족들에 대한 연락 등을 처리했다.
▽사망자 △이근배(68) △윤재관(62) △신원 미확인 남자 3명, 여자 1명(이상경상대병원)△장두성(51) △김정식(54) △이성희(61) △황정식(65) △신원 미확인 여자 5명, 남자 1명(이상 진주의료원) △신원 미확인 여자 3명(이상 한일병원)
<진주〓강정훈·정승호·석동빈기자>manman@donga.com
▼"한국의 아우토반"…과속사고 잦아▼
98년 10월 개통된 진주∼대전 고속도로의 서진주∼함양구간 50.2㎞는 왕복 4차로로 국내 고속도로 가운데 직선구간이 가장 많아 과속에 의한 대형사고가 잦은 곳이다.
교통량이 적고 속도를 내기 좋아 ‘한국의 아우토반’으로 불릴 정도이며 자동차 마니아들이 야간시간을 이용, 시속 160㎞ 이상으로 달리기도 한다. 교량 69개, 터널 3개, 휴게소 2개가 설치돼 있으며 지리산 자락을 끼고 있어 주변 경관도 좋다. 상하행선에 각 2개씩 모두 4개의 무인속도측정기가 설치돼 있으나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 사고 예방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