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은 철도청의 해프닝에 대해 “치졸 유치 편협 옹졸의 극치” “양국 국민 감정만 더 상하게 했다” “반일도 좋지만 일본 관광객 골탕 먹여봐야 우리만 손해”라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지나친 반일 감정으로 흐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왜곡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좋지만 감정적인 대응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감정표출〓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은 “요즘 한국생활은 스트레스 그 자체”라며 힘겨워하고 있다.
일본인 유학생으로 한국어가 제법 유창한 다카하시 아키라(高橋明·25·한국학 석사과정)는 21일 서울 종로에서 밤늦게 택시를 탔다가 50대 운전사에게 봉변 아닌 봉변을 당했다. 다카하시씨의 서툰 억양을 들은 운전사는 대뜸 “일본인이냐”고 묻더라는 것. ‘재일교포’라고 둘러댄 그는 목적지까지 가면서 일본에 대한 분풀이를 그대로 들어야 했다.
“식민지시대 일본인들의 만행에서부터 교과서 왜곡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운전사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혹시나 일본사람인 것을 알아챌까봐 내내 조마조마했어요.”
다카하시씨는 “친하게 지내던 한국 친구들마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느냐’고 등을 돌려 한국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여행 온 일본인 친구 2명과 23일 강남의 한 음식점을 찾은 조재은씨(26·여)는 낯뜨거운 경험을 했다. 조씨 일행이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자 옆 테이블에 앉은 40대 남자가 갑자기 “쪽발이 X들이 한국에 와서 떠든다”고 큰소리로 외친 것. 조씨는 “일본인 친구들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었기에망정이지 창피해서 혼났다”고 털어놓았다.
인터넷 공간은 더욱 심하다. 현재 운영중인 ‘안티 일본’사이트만도 10여개. ‘쪽발이를 죽이고 싶다’ ‘(일본을) 불바다로’ ‘엽총 들고 다니면서 (일본인들을) 사냥하고 싶다’는 등 원색적인 욕설과 증오의 표현 일색이다.
▽관광취소 사태〓이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4일 현재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후쿠오카(福岡) 나고야(名古屋) 센다이(川內) 등 5개 지역에서 70개 단체 2549명이 방한을 취소했고 15개 단체 1211명이 방한취소를 검토중이다. 일본인 관광객의 전년대비 증가율도 99년 11.8%, 2000년 13.1%에서 2001년 6월 현재 5.4%로 둔화됐다.
외국인 투숙객 중 80%가 일본인 관광객인 서울 A특급호텔의 경우 2주 만에 400여개의 방 예약이 취소됐다. 호텔 관계자는 “한국에 가면 신변이 위험하다는 소문까지 돌아 예약취소가 잇따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연간 8000∼9000명의 일본인 수학여행단을 유치하고 있는 대한여행사 일본팀 정시태(鄭時兌)대리는 “벌써 4건의 수학 여행단이 방한을 취소했다”며 “8∼11월은 일본 학생들의 수학여행 성수기인데 취소가 잇따라 관광업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 김재호(金在鎬·45) 박사는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교과서 왜곡문제를 정부와 여론주도층인 학계가 처음부터 감정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라며 “경제분야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일본은 ‘이웃’이지 ‘적’이 아니며 보다 이성적이고 섬세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기득·김창원·박민혁기자>rati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