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재 교수〓교육이 위기라는 소리가 높다. 몇몇 연구결과에 따르면 교사 10명중 8명 정도가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교사 2명중 1명은 학부모로부터 신뢰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교직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 ‘교육 이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 교육은 정말 절망적인가.
▽우천식 박사〓지난해 학부모 600명과 교원 등 교육전문가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었다. 학부모의 90%, 교육 전문가의 93% 정도가 우리 교육이 위기 상황이라고 대답했다. 10년 뒤 전망에 대해 비관론과 낙관론이 교차했다. 소득과 학력이 높고 젊은 계층일수록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비율이 높았다. 여론 주도층과 젊은 교사들이 교육의 미래를 비관하고 있다는 것은 10년 후 교육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전풍자 이사장〓한 중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학교가 너무 권위적이고 경직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장과 교사,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부모간 신뢰가 없다. 대화가 안된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글 싣는 순서▼ |
- 1. '국론분열-갈등' 치유의 길 - 2.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 - 3.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 4. 교육에서 희망을 찾아라 - 5. 남북 문제 바른 해법은 - 6. 4강과의 외교관계 재정립을 - 7. 외국 전문가들의 충고 |
▽이 교수〓학생은 재미없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교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가르쳤는데 왜 매도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쉰다. 학부모는 학교만 믿고 있기가 불안하다고 한다. 교장은 뭘 하나 하려고 해도 여기저기서 반대하니 무사안일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교육 개혁도 하고 돈도 썼는데 학교가 왜 이지경인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교육주체 모두가 서로 답답하고 힘이 합쳐지지 않고 있다.
▽전 이사장〓학교 붕괴의 원인에 대해 학생과 교사간의 인식차가 크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미리 배워 분위기가 산만하다고 한다. 아이들은 교사들이 잘 가르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기성세대와 성장세대의 인식 차이가 아닐까. 아이들은 많이 변했는데 교사들은 변화를 수용하고 대처하는 속도가 더디다. 의식 수준이 높아진 학부모들은 학교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교사들은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고 한다. 수업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희망을 갖기 힘들다.
□상처받은 교사들
▽이 교수〓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교육 목표와 학부모의 요구간에 괴리가 없다. 중고교에서는 교사들이 좋은 대학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요구와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키운다는 교육적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또 다양한 능력과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있어 난감해한다. 게다가 교육개혁 과정에서 40, 50대 중견교사들이 어느날 갑자기 무능하고 부도덕한 교사로 매도당했다. 교사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우 박사〓교원 정년단축은 합리성을 결여한 정책이었다. 외국에서도 교원을 대상으로 한 개혁이 성공한 예는 없다. 50대 교사들이 교직을 택할 당시 우수한 재원들이 교직에 몰려들었다. 젊은 교사들이 이들의 빈자리를 메우기는 힘들다. 정부는 교원 정책을 바로잡는 데 우선 신경써야 한다.
▽전 이사장〓학부모 단체들도 교원 정년단축에 찬성했다. 일부 무능한 교장을 내보내고 젊은 교사들이 교단에 활력을 불어넣길 바랐다. 50대의 유능한 교사들까지 싸잡아 매도할 생각은 없었다.
▽이 교수〓교육은 교사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투자가 인색하다. 기업은 임원 한 사람을 양성하려고 20여년간 엄청난 투자를 한다. 군대도 대령 한 사람 만들기 위해 그만한 투자를 한다.
▽우 박사〓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어느 나라나 교육 위기론이 대두될 때 교원의 질 저하가 빠짐없이 지적됐다. 교원 임용 과정이 관료적이다. 교원에 대한 보상체계나 인사제도도 능력에 따른 차별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다양한 교육 욕구 충족시켜야
▽우 박사〓학부모의 요구와 학교의 교육적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지금까지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다. 학부모들은 학교가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노릇을 제대로 하라고 한다. 80년대까진 학교가 이같은 요구에 충실했다. 사회가 점차 성숙하면서 교육 정책은 전인교육 등 고차원적인 목표를 추구하는데 학부모와 학생들은 여전히 대학 입시에만 매달린다. 학부모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정부는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계도할 것인지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전 이사장〓서울 강남지역에서 학생들 성적도 좋고 인성교육도 잘 하는 학교가 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교장에게 ‘누가 당신더러 인성교육 하라고 했느냐. 좋은 대학 보내달라고 했지’ 하더란다. 학부모들의 비교육적 요구에 학교가 밀리고 있다. 교사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학부모들을 설득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 교수〓입시 위주의 교육을 원하는 부모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모들도 있다. 현행 평준화 정책은 다양한 요구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 학교 교육도 계약 중심으로 가야 한다. 학생의 학교 선택은 바로 그 학교의 특성에 동의한 것과 같은 계약의 효력이 있어야 학생들도 책임의식이 생긴다.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차별적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전 이사장〓자립형 사립고든 대안학교든 학생이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의 학력을 인정해주는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우 박사〓미국의 명문고로 꼽히는 앤도버나 필립스 아카데미를 가보면 건물이 형편없다. 그런데 많은 학부모들이 지원하고 교육 여건에 불만도 없다. 만일 학생을 추첨해 배정했다면 사정은 다를 것이다. 평준화를 포기하면 모든 학교가 대학 입시에만 매달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학부모들 전체가 입시 명문고만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학교 서열화는 다른 정책 수단으로 보완해야 한다.
□효율적 투자 원칙
▽이 교수〓사회의 다른 분야에 비해 교육부문에 투자가 적다. 예전에는 집보다 학교가 좋았는데 요즘엔 거꾸로다.
▽우 박사〓교육 여건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560조원이 필요하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0달러에서 1만달러 사이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인데 3만5000달러인 미국과 같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교육재정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산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평가가 없다.
▽전 이사장〓투자의 중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도 중요하다. 의무교육 기간인 초중등 교육에 투자 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이다. 정부의 투자 원칙도 이해할 수가 없다. 국립대 등록금을 인상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사립대와 다른 게 뭔가.
▽우 박사〓정보화 투자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2005년 2차 정보화 투자가 끝나면 인터넷 멀티미디어 활용 교육이 가능해진다. 학교 신증축을 하려면 12조원이 들지만 정보화 기술을 활용하면 8700억원으로 비슷한 여건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 문제는 대학이다. 미국에 과외가 없는 이유는 대학들간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 100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이뤄져 일류대학과 삼류대학간 별 차이가 없다. 미국 대학은 서해안 구조인데 우리 대학은 동해안 구조다. 몇몇 대학의 교육 여건이 다른 대학과 크게 다르다. 학생들이 일부 상위권 대학에만 몰리니 경쟁의 심도가 깊어진다. 대학은 자원집약적이다. 초중등 교육도 급하지만 대학에 투자하지 않으면 교육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
▽전 이사장〓국가재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학 교육의 세계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기여입학제와 같은 재정 확충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 교수〓학교와 학원이 경쟁하면 학교가 뒤진다. 학부모가 공교육에 투자를 더 해야 한다. 돈을 낼 수 없는 사람은 정부가 지원하면 된다.
▽우 박사〓중고교는 학부모가 똑같이 등록금을 낸다. 가난한 사람이 더 부담하는 역진제다. 형평성을 지향해도 실제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 투자 의향이 있는 부유층 학생들에게 더 거둬 세금으로 일부분을 환수해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것이 현 체제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대학에도 기부금 입학제와 같은 제도를 신중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개념이 필요
▽전 이사장〓자녀의 능력과 관계없이 모든 학부모들의 목표는 일류대 진학이다.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영재일 거라고 착각한다. 이러한 기대를 버리지 않으니 아이도 학교 교사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교육 목표가 일류대 진학에서 지식 기반 사회에 적응하는 건전한 시민을 길러내는 쪽으로 전환돼야 한다.
▽우 박사〓지금은 11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녀를 10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투자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10년 뒤 10등 대학과 11등 대학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노동시장의 인력채용의 관행이나 변화가 학부모에게까지 전달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교육 주체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교수〓모두가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도 있고 새로운 학력관을 갖고 자녀를 지도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언론에서 이들을 많이 소개해 교육에서 희망을 찾고 생산하는 일을 해야 한다.
▽우 박사〓우리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엄청난 양적 팽창을 이뤄내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교실 붕괴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교육이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일시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효약과 같은 해법은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다거나 누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각 주체가 서로 힘을 합해 집단적인 문제 해결 모델을 찾아야 한다.
<정리〓이진영기자>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