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공해딛고 토종식물 끈기있게 자라요"

  • 입력 2001년 8월 26일 19시 07분


“창경궁 안에 293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외래 식물의 비율이 낮아 보존가치가 높지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을 찾은 환경단체 ‘환경과 공해연구회’ 회원들과 환경 전문가들은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은주 교수(38)의 이 같은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TV사극 ‘여인천하’ ‘명성황후’의 실제 무대인 창덕궁과 함께 조선왕조의 역사를 지켜온 창경궁은 왕후 등 여인들이 머물렀던 곳이라 유난히 조경이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웠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탔다가 광해군 8년인 1616년에 재건됐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 이후 이곳의 식생은 크게 훼손되어버렸지요.”

일본은 창덕궁의 순종황제를 ‘위안’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 시설 일부를 파괴하고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을 지었다.

“1984년 이후 일제가 고의로 심은 왕벚나무, 노무라단풍 등을 제거한 뒤 우리나라 왕궁을 상징하는 소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를 집중적으로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궁궐을 둘러보는데 김기범군(9·인천 신현북초등학교 3년)이 단풍나무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어, 나뭇잎 끝이 까맣고 구멍이 뚫려 있어요!”

대기오염 때문이었다. 이 교수는 “서울의 대기오염이 심각하다보니 식물의 피부 호흡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생태기행의 마지막 코스는 식물원 앞 ‘자생식물학습장’.

산옥잠화, 다래나무, 쑥부쟁이 등 400여종의 식물이 있는 9월 하순까지가 관람의 최적기이다.

조심할 것은 푯말과 식물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날 탐사팀은 ‘하늘에 발톱’이라는 푯말 뒤에 원래 식물을 가린 채 무성히 자란 포도넝쿨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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