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신상공개 반응]해당자측" 한번실수 두번 죽이나"

  • 입력 2001년 8월 30일 18시 48분


30일 신상이 공개된 청소년 상대 성범죄자 H씨(54·공무원)는 “친한 직장 동료들 몇 명은 알고 있지만 가족이나 자식들은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자주 얼굴을 마주쳤던 초등학교 여학생이 예뻐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 순간적으로 가슴을 만졌다. 바로 입건돼 벌금을 내고 나왔다. 충분히 반성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한 일”이라고 되풀이 말하면서도 “신상공개는 인권침해다. 나는 상습적인 성 범죄자도 아니다. 한번의 실수로 직장도 잃고 가족에게까지 버림받는다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8월 11∼13세 여자 어린이 3명을 강제추행한 L씨(35·학원장)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잘 대해 주다 보니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일이 닥칠지 두렵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는 “이미 집행유예 2년이라는 대가도 치렀다. 가족과 친지들은 이제 한 순간의 실수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가족들 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

지난해 8월 한 여관에서 10대 소녀 2명과 성관계를 맺은 L씨(33·회사원)의 부인은 “그 일 때문에 남편은 이미 회사도 옮겼고 가족들에게 백배 사죄를 했다. 남편이나 나에게 지난 시간은 매일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악몽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제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새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다시 이름이 공개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무엇보다 남편이 힘들게 취직한 회사에서 다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하다”고 흐느꼈다.

그는 “몸을 파는 일에 죄책감을 갖지 않는 10대 소녀들도 문제”라면서 “청소년 성보호도 중요하지만 처벌을 받은 사람의 이름을 공개해 좋은 일을 하며 바르게 살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빼앗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성범죄자들과 가족들의 항변은 성범죄 피해 소녀측이 겪은 상처에 비할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여름 미팅에서 만난 ‘고교생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A양(16·중 3)은 요즘도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 가해자인 K군은 경찰에 구속돼 처벌을 받았지만 A양은 지금까지도 ‘나도 죄인’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소 밝은 성격이었다는 A양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학교까지 옮긴 뒤부터 “공부도 싫고 사람도 싫어 항상 혼자 다닌다”고 고백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C양(15·중 2)은 “‘그 일’ 이후 삼촌은 집안과의 왕래를 끊었고 부모님조차 아예 함구하고 있어 집안 분위기가 늘 우울하다”고 전했다. C양은 “내가 헤프게 행동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늘 괴롭다”면서 “남자 만나는 것이 두려워 장차 결혼도 못할 것 같다”고 울먹였다.

이날 기자가 취재를 위해 연락을 취한 사람 대부분은 휴대전화를 꺼놓거나 아예 받지 않았다. “너라면 기분이 좋겠느냐”며 거친 욕설을 내뱉고 끊는 경우도 있었다.

<허문명·최호원·김정안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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