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이용훈(전대법권)위원장, 이종왕(변호사)위원, 김영석(연세대신문방송학과교수)위원,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위원.〉
-국내신문들의 반론권 보장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영석 위원〓반론권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대답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정정보도 청구권’이 ‘반론보도 청구권’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변모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 등 사회적 여건과 국민의식 수준이 발전하는 것과 병행해 반론권 등장 빈도가 수적으로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변화한 사회 여건에 걸맞은 수준의 반론 보도는 아직 인색한 단계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인권보호-소모적 소송 예방▼
▽이종왕 위원〓보도가 된 뒤 관련당사자에게 사후 반론의 기회를 주는 것도 좋지만 취재 및 기사작성 과정에서부터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청취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보도 이후 발생하는 반론권 요구에 대해서도 신문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이 인권보호 정신에도 부합되고 소모적인 소송싸움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양창순 위원〓보통 시민의 입장에서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보았을 때 사후 반론게재로 손상된 권리를 충분히 되찾을 수 있다고 믿기 힘듭니다. 해당언론사측에 반론권을 요구하더라도 마지못해 받아들여지는 정도라는 것이 아직까지도 평범한 시민 다수의 생각이 아닐까요.
▽이용훈 위원장〓이럴 때마다 저는 새삼 ‘기사에는 과연 무엇을 실어야 하는가’ 하는 원론적 문제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즉, ‘무엇이 기사냐’에 따라 그 기사에 대한 반론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정확한 사실(Fact)을 실었다면 반론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기사’가 아닌 ‘의견’을 실었기 때문에 반론문제가 제기된다고 봅니다. 반론이 필요한 경우와 불필요한 경우에 대한 개념 설정부터가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정확한 취재로 정확한 기사를 보도했다면 반론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기사의 가치 판단이나 의견에 대한 반론보다는 그 기사의 사실성 여부와 관련한 부분에서 대부분의 반론권 시비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봅니다.
▽김영석〓사실만을 모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진실 보도는 아닙니다. 구체적 사실을 나열하는 듯 하지만 거기에 비판이나 논평을 가하는 ‘의견 행위’가 개입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나 국정홍보처가 공식적으로 반론권 개념을 차용해,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기사에 개입됐다고 판단되는 의견 혹은 가치판단의 문제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론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이런 점에서 주목됩니다.
▽이종왕〓정기간행물법에 규정된 반론보도청구권은 ‘사실적 주장’에 대해서만 반론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명백히 사실에 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론권을 줄 의무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용훈〓요약하자면, 사실관계와 관련해 정정보도는 있을지언정 반론보도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의 인식이 다를 경우 반론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대부분의 반론이 기사의 ‘오보’ 여부와 관련해 이루어져서는 신문과 독자 모두의 수준 향상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측과 갈등을 지속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지나치게 반론을 많이 허용하는 측면이 언론계에 있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만….
▽김영석〓반론권은 한 국가의 상황, 국민과 언론인의 의식 수준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상대적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의식과 프로페셔널리즘이 강하게 자리잡은 선진국 언론일수록 심각한 인권침해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론 사례가 아주 적지요.
▽양창순〓독자의 입장에 있는 전문가집단의 일원이 사실상 오보임이 분명한 기사로 인해 피해를 보았는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반론은커녕 정정이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사례를 주변에서 더러 보아왔습니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고의가 아니더라도 기자의 식견과 객관성 부족, 부주의한 감정 개입 등으로 보도피해를 일으키는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반론권이 남용될 때는 독자의 알권리를 위축시키는 문제를 낳게 되는데, 반론권의 적정 수준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종왕〓합리적이고 건전한 반론은 적극 수용돼야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터넷 시대의 독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이용훈〓정당한 반론권이라 볼 수 없는 억지성 주장을 집단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시도를 받아들이는 문제는 언론이 폭력 앞에 굴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같은 풍조는 공권력이 나서서라도 바로잡아야 마땅한 일이지요.
▽김영석〓헌법에 보장된 두가지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중입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개인의 인격권,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보장하느냐 하는 과제는 사회적 수준과 역사적 토양에 따라 정해져야 할 문제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한 사회의 전반적 발전에 저해되므로 모든 것을 언론의 상식과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보는 것이 서구의 일반적 견해이지만 세분해서 보면 미국과 유럽이 서로 많이 다릅니다.
▽이종왕〓개인의 존엄한 인격권과 언론자유는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동시에 똑같이 존중되고 합리적으로 조화돼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가 돼야할 것입니다.
▼‘무엇이 공익인가’가 기준▼
▽이용훈〓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존엄 사이의 조화점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무엇이 공공의 이익(公益)에 부합하는가 하는 선별기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언론은 사회적 공기(公器)라는 대명제를 상기한다면 초점은 보다 분명해질 것입니다.
▽김영석〓기자 스스로의 전문의식과 윤리의식을 더욱 높이는 것이 충돌하는 두 가치의 접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반론권이 나오게 된 기본 정신을 되새겨보면 이는 보다 분명해집니다. 언론이 거대화, 독점화하면서부터 역설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사람들은 하게 되었습니다. 즉, 독자의 자유가 아니고 언론 소유자의 자유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반론권은 등장했지요.
▽이용훈〓매체가 적어 사실보도만으로도 신문의 사명을 다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다매체시대를 맞아서는 신문의 역할과 방향이 갈수록 뉴스의 가치 평가에 중점을 두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에서 반론권은 더욱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피니언 리더로서, 사회의 공기로서 거듭나는 신문의 활로와도 관계된 문제일 것입니다.
<정리〓박윤석기자>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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