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는 ‘게이트(gate) 국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앤지(G&G) 이용호(李容湖) 회장의 금융비리,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의 수뢰혐의 수사중단, 안정남(安正男) 전 건설교통부장관의 재산형성 의혹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국감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과 앞으로 규명돼야 할 사항들을 점검해본다.》
▽검찰 내 이용호씨 비호 세력〓서울지검 특수2부가 작년 5월9일 이씨를 긴급 체포한 뒤 하루 만에 전격 석방하고, 두달 후 불입건 조치하는 과정에 검찰 간부들이 압력을 행사했는지가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
당시 서울지검장이던 임휘윤(任彙潤) 부산고검장과 3차장이던 임양운(林梁云) 광주고검차장이 작년 4월 내사계획 보고를 받았는지, 임 고검장이 작년 5월 김태정(金泰政) 변호사의 ‘전화 변론’을 받고 누구에게 뭐라고 지시했는지, 특수2부장이던 이덕선(李德善) 군산지청장이 작년 7월 이씨 사건을 종결하면서 누구와 상의했는지 등이 주요 포인트다.
▽이용호씨의 정·관계 로비〓680억원대의 횡령과 250억원대의 주가조작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씨가 금감원 조사 및 검찰 수사를 전후해 정관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파상적인 로비를 했다는 게 야당 의원들의 주장.
검찰은 이씨와 친분관계가 있는 1819명의 명단을 확보했다고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금품 수수 내용이 밝혀진 것은 28일 국회 정무위의 금감위 국감에서 이씨가 민주당 박병윤(朴炳潤) 의원에게 1000만원(박 의원은 2000만원 받았다고 주장)을 줬다고 말한 게 전부.
대검 중수부는 23일부터 수사인력 전원을 투입해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 조작과 당국의 묵인〓금감원은 작년 3월 증권거래소로부터 이씨의 주가조작 사례를 넘겨받고 조사를 벌여 3건의 시세조종 혐의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올해 들어서야 본격화됐다. 검찰이 이씨를 기소하면서 적시한 주가조작 사례는 무려 12개 기업.
그런데도 당국이 1년 가까이 모른 척한 것은 여권 실력자의 압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야당 의원들의 주장. 특히 금감원은 작년 12월 이후 주가조작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통보만 해 의혹을 사고 있다.
▽삼애인더스 해외 전환사채(CB) 편법 발행〓이씨 계열사인 삼애인더스가 발행한 900만달러 규모의 CB는 일본 노무라증권을 거쳐 산업은행이 모두 매입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이씨와 이씨 관련 회사가 산 뒤 보물선 발굴 등을 소재로 주가를 띄워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겼다.
이 때문에 야당에선 산업은행이 이씨와 사전에 CB 매입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애인더스가 CB를 발행할 때 주간증권사를 여러 차례나 바꿀 정도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아 산업은행의 약속이 없었다면 CB 발행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리빙TV 경마 중계권〓유선방송 채널인 리빙TV가 마사회로부터 경마중계권을 따내는 과정에 이씨가 역할을 했다고 야당 의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씨가 작년 5월 로케트전기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리빙TV 주식을 넘기면서 수십억원의 차익을 챙겼고, 로케트전기가 이후 수개월 뒤 마사회로부터 경마중계권을 따낸 것으로 보아 이들 3자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것.
이에 대해 마사회 측은 “작년 6월 리빙TV에서 사업제안이 와서 정식 절차를 거쳐 중계권을 제공했고, 이 과정에 어떤 압력이나 청탁도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김형윤씨 수사 중단〓작년 12월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지검 특수2부는 이경자(李京子) 동방금고 부회장으로부터 국정원 경제단장이던 김씨에게 5000만원을 주었다는 진술을 받고도 김씨를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 여권 실력자들의 압력이 있었다는 게 야당 의원들의 주장.
이에 대해 검찰은 “김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고, 적당한 시기에 수사를 재개하려고 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야당 의원들은 “국정원 현직 간부를 9개월 가까이 출국금지시켜 놓고 조사 한번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김씨 수사를 막은 사람을 밝히면 이 사건의 배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형택(李亨澤)씨와 허옥석씨 관련성〓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처조카로 예금보험공사 전무인 이형택씨는 27일 국회 재경위 국감에서 이용호씨를 보물섬 발굴업자에게 소개해주었다고 말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형택씨가 동화은행에 근무할 때 행원이었던 허옥석씨는 99년 D투신증권 재직 시절 우체국 예치금을 2년반 동안 1조6347억원 유치해 16억여원의 성과급을 챙겼다는 의혹이 국감에서 제기됐다.
▽정모씨의 관련성〓한나라당은 여권 실세 K 의원과 K 전 의원, 그리고 정모씨를 이번 사건의 핵심 배후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이들이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각종 이해가 얽힌 사건이나 인사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에 관련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체육계 출신의 정모씨 측은 이에 “이번 사건은 물론이고 다른 이권 현안에 관여한 바 전혀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안정남 미스터리〓안정남 전 건설교통부장관에 대해선 다섯 가지의 의문이 제기된 상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땅 등 5건의 부동산을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매입하게 된 경위, 97년 국세청 직세국장 재직시절 수뢰 여부, 99년 이용호씨 계열사 회계조작 사실을 적발하고 세무조사를 하지 않은 이유, 두 동생의 각종 특혜 수수 배경 등이 그것.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안 전 장관의 사퇴로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다.
▽박순석(朴順石) 신안그룹 회장 구속〓이용호씨 사건 와중에 전격 구속된 박순석씨 사건에 대해서도 일각에서 “‘이용호 게이트’를 덮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씨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사업규모를 급성장시킨 배경에 대해서도 많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송인수·신석호·이훈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