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학벌타파' 구호로 될까

  • 입력 2001년 10월 3일 18시 56분


“대학 졸업장의 학교 마크는 평생 달고 다니는 신분의 징표다. 명문대생에게는 자랑스러운 ‘훈장’이겠지만 대다수 비명문대생에게는 ‘주홍글씨’다. 이 훈장 쟁탈전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자폭하고 있으며 패자 부활전이 없기 때문에 모두 비장한 각오로 배수진을 치고 싸울 수밖에 없다.”

국민대 김동훈(金東勳) 교수가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라는 책에서 우리 사회의 학벌문화 폐단을 비판한 대목 중 하나다.

김 교수의 지적대로 기업체 채용이나 교수임용 등에서 실력보다 출신 대학을 먼저 따지는 학벌주의가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각 대학의 본교 출신 교수채용 비율을 보면 실감이 난다. 서울대 95.2%, 연세대 80.9%, 고려대 62.6%, 조선대 73.2%, 가톨릭대 71.0% 등 동종교배(inbreeding) 현상이 심각하다.

한완상(韓完相) 교육부총리는 5월 TV 토론 프로에 출연해 “나도 학벌주의의 수혜자지만 앞으로 학벌 타파를 위한 국민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육부가 학벌주의 타파에 적극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학벌주의의 그늘에서 ‘울음’을 삼켜야 했던 사람들은 교육부의 정책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표어 공모, 학벌주의 추방 행사,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를 통한 국민의식개혁 등 교육부의 추진계획은 국민을 단순한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상이 짙다. 캠페인으로 학벌주의가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역주의 타파’를 강조할수록 지역주의가 더 부각되는 식의 오류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학벌타파는 실력에 바탕한 기회의 공정성을 의미해야지 명문대에 대한 ‘연대공격’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의 정책이 ‘울음’을 일시적으로 달래는 소극에 그친다면 곤란하다. 대입제도부터 기업채용 등에 이르기까지 실질적 변화가 가능하도록 차분한 정책 논의를 기대한다.

이인철<이슈부>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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