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4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만든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사실상 ‘사장(死藏)’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올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장사법은 해마다 새로 생겨나는 17만여기의 묘지로 인한 국토잠식을 막기 위해 종전의 ‘매장 및 묘지에 관한 법률’의 규제 및 처벌내용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시한부 매장제 도입과 묘지 면적의 축소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는 이 법은 규정이 너무 엄격해 “재임 중 위반사례를 단속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있을 정도다.
▽겉도는 개정법〓개정된 법은 ‘시한부 매장제’를 도입하고 있다. 한번 만든 묘지는 영구히 둘 수 있던 종전법과는 달리 묘지의 사용기간을 제한, 기본사용 기간을 15년으로 하고 15년씩 3회에 걸쳐 연장한 뒤에는 1년 이내에 화장 또는 납골토록 했다.
1기당 묘지면적도 대폭 줄였다. 종전 24평이던 개인묘지는 9평, 9평이던 집단묘지는 3평 이내로 줄였다.
특히 과태료 부과와 고발은 물론 불법묘지의 연고자가 이전이나 개수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1년에 2차례 반복 부과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 불법묘지를 뿌리뽑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거리제한은 그대로 뒀다. 도로나 하천 등으로부터 300m, 20호 이상 인가로부터 500m이내에서는 여전히 묘지를 쓸 수 없다. 농지법이나 산림법 등에도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불법묘지를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며 법적으로 의무화돼있는 신고 자체도 기피하고 있다.
경남도의 경우 한달 사망자가 1700명 안팎에 이르지만 개인묘지의 설치 신고는 거의 없다. 8월말까지 691명이 사망한 합천군에서는 개인묘지 설치가 단 1건 신고됐고 충북 영동군도 신고는 1건에 불과했다. 거의 모두 불법묘지를 조성한다는 이야기다.
전통예절 연구단체인 ‘한강(寒岡)전례연구원’ 관계자는 “개정된 법률의 거리제한을 지키면서 산림법 농지법 등 관련 법규에 저촉되지 않는 묘지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점과 대책〓많은 전문가들은 화장과 납골(納骨) 위주의 장묘문화를 지향하는 개정법의 취지는 옳지만 법 시행에 앞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과 홍보가 부족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장묘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민 반발이 거세다 보니 “재임기간 중 단속은 않겠다”는 자치단체장도 있다. 위반사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이를 단속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단속 공무원들은 “우리나라 관습상 초상집에 가서 법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다가는 몰매를 맞는다”며 손을 내젓는다.
최근 장례를 치른 경남 남해군 주민 김모씨(50)는 “일정기간 ‘양성화’할 수 있도록 경과규정을 두고 개정법을 시행하는 게 바람직했다”며 “특히 부부 중 한사람을 먼저 매장했다면 옆자리의 추가매장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월 경남 남해군에 딸린 섬인 상주면 노도의 이모씨(55)는 부친상을 당했으나 어머니 산소 옆에 모시지 못하고 본섬으로 나와 공동묘지에 매장해야만 했다.
전문가들은 매장문화를 선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같은 법적 제도적 보완과 함께 화장 납골시설을 현대화하고 고급화하는 노력도 병행돼야한다는 강조했다.
<창원·광주·대구〓강정훈·정승호·이권효기자>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