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태〓4일 서울 도봉구의 A병원. 교통사고 환자로 가장한 취재기자가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다 벽에 부딪쳐 목이 아프다”고 하자 이 병원 접수원은 이름, 전화번호, 주소만을 공책에 기재하고 X선 촬영실로 안내했다.
이 병원은 대한손해보험협회가 교통사고환자와 관련해 진단서 남발과 보험금 과잉청구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주목하고 있는 곳.
X선 촬영실로 들어서자 목뿐만 아니라 허리부위까지 10여장의 X선 사진을 순식간에 찍고는 정형외과 외래실로 안내했다.
담당의사는 X선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뼈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이 부분들이 심한 충격으로 통증을 유발하고 있네요. 염좌입니다. 허리도 마찬가지구요. 입원해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불과 2분만에 내린 진단 결과였다. 염좌는 관절을 싸고 있는 인대가 손상된 것으로 ‘삐었다’는 뜻. 취재기자는 7월 종합검진에서 정상판정을 받았고 그 어떤 충격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허리 부위는 아프다고도 하지 않았다.
당장 입원하기는 어렵고 내일 와서 입원하겠다고 하자 의사는 “주사맞고 물리치료를 반드시 받고 가라”고 말했다.
또다른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울 동대문구 B병원에 들어선 취재기자는 담당의사로부터 며칠간 통원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X선 사진을 보면서 의사는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허리부위의 인대가 심하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진료비 허위청구〓대한손해보험협회가 경기 남양주시 C병원의 치료비 청구실태 자료를 정밀 조사한 결과 98년부터 올 2월말까지 이 병원이 보험금 명목으로 청구한 금액 11억여원 가운데 20%에 해당하는 2억여원이 허위청구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물리치료 등 이학요법료로 청구한 금액은 33%나 허위 청구됐고 주사료, 검사료, 투약처방료도 각각 28%, 12%, 8%가 허위청구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정도의 허위청구는 대부분의 병의원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협회관계자의 말이었다.
또한 이 협회가 97년 4월부터 올 5월까지 교통사고 관련 지역별 ‘부재환자’(입원했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병원에 없는 환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환자 중 15.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협회 보험범죄특별조사반 김영복(金永福) 반장은 “98년 2612건이었던 보험범죄 적발 건수가 작년에는 4667건으로 급증하는 등 보험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가장 흔한 보험범죄는 교통사고로 손쉽게 입원을 해서 보험금을 타내려는 형태이며 의사들이 진단서를 남발해 이들의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적 문제점〓허위진단서 작성죄로 의사들을 형사처벌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 교통사고와 관련해 내리는 염좌진단은 다른 작은 충격으로도 나타날 수 있고,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면 그 말만으로도 이 같은 진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허위진단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 의사가 내린 진단을 다른 의사가 잘못됐다고 입증해주지 않는 한 허위진단은 객관적으로 입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대학병원 외과의사 김모씨(31)는 “일부 의사들이 진단서를 남발해 병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에 대한 ‘방어진료’ 차원에서 과잉진단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