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의 대인관계클리닉]참다 참다 폭발하는데…

  • 입력 2001년 10월 18일 18시 36분


30대 초반의 회사원 김모씨. 그는 얌전한 사람이다. 말수도 적고 눈에 띄지 않는다. 있으면 있나보다 하고 없어도 누구 하나 그의 부재를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무심하게 대한다. 심지어 화를 낼 때도 최소한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는 화낼 줄도 모르고 그래서 적당히 무심하고 약간은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인물쯤으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회사에서 가을 정기 야유회가 있었던 날이다. 그는 자기 이미지를 한 번에 뒤집는 뜻밖의 상황을 연출했다.

야유회가 끝나고 다들 돌아가려고 버스에 올랐을 때였다. 마지막으로 그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그제서야 ‘아, 그 친구가 있었지’하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곧 나타나긴 했는데 버스는 금방 출발하지 못했다. 만취한 그가 버스에 올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벗어던지며 난리를 피웠던 것이다.

소동의 절정은 그가 부장을 향해 덤벼들면서 “야, 너 높은 자리에 있다고 그동안 날 우습게 봤지? 네까짓게 뭐야? 나이먹고 부장이면 다야?”하며 주먹을 날린 거였다. 모두들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동안 두번째 주먹이 날았고 그제서야 다들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어 간신히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해고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동안의 정상(?)이 참착되어 시말서를 쓰는 선에서 마무리가 된 것이다. 물론 그 후로 아무도 더 이상 그를 무심히 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을 경험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좋건 나쁘건 그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소화해낸다. 하지만 개중에는 우울하고 불안하고 화나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쁜 건 그런 감정 자체를 아예 억압하는 것이다. 이 억압된 감정은 방출되고 해결되지 못한 채로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나중에 엄청난 압력으로 뿜어져 나오게 마련이다.

이런 타입은 특히 분노의 감정을 억압하다가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한꺼번에 폭발시키기도 한다. 김씨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하지만 그건 참은 게 아니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감정표현의 절제와 그 균형을 아는 데서 비롯된다는 걸 그는 몰랐던 것이다.

감정의 응어리는 그때그때 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지 않으면 피해의식만 깊어져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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