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안에 들어가 보니 개털이 날아다니고 요리 중인 종업원의 손톱에는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어 민망할 정도였다.”
서울의 12개 소비자단체 회원이면서 올 들어 현재까지 서울시의 ‘명예 식품위생감시원’으로 시내 각종 음식점을 돌아본 주부 300여명이 생생한 체험담을 담은 활동보고서(331쪽 분량)를 7일 펴냈다.
▽위생상태〓가족의 식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 주부는 음식점 주방의 위생 상태를 확인한 뒤 ‘밥맛 떨어지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더러운 행주를 쓰는 호텔 횟집, 먹다 남은 수박을 물수건으로 덮어놓은 갈비집, 상추 바구니를 더러운 물이 흐르는 주방 바닥에 내려놓은 고깃집,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통조림을 보관 중인 대형 뷔페 등을 돌아본 뒤 충격을 받았다는 것.
공통적으로 지적된 것이 더러운 주방 바닥과 냉장고.
녹색소비자연대 정영란씨는 “조리실 바닥이 기름때로 끈적거렸고 냉장고는 가동 이후 청소를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더러웠다”고 밝혔다.
서울YWCA 최승숙씨도 “주방 바닥에 물이 고여 있어 ‘미생물의 온상’이 되고 있었고 냉장고는 녹슬고 문짝도 떨어진 데다 물까지 새고 있었다”고 말했다.
▽식품 보관상태〓한 대형 뷔페에 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박순자씨는 “냉동실에서 유통기한이 한 달도 더 지난 오징어순대를 발견했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 김문미씨는 “냉면용 고기를 포장도 하지 않고 냉동실에 처박아둔 것을 보고 기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규모 유명 음식점도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고급 일식집 주방에서 초밥용 밥통 옆에 쥐잡이 끈끈이를 설치해 둔 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박정숙씨)
“고풍스럽고 우아하게 꾸며진 대형 음식점의 주방에 들어서자 주방장이 속옷 차림으로 요리를 하고 창문에는 방충망이 뜯겨져 나가 파리가 들락거렸다. 식품재료 보관창고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한국소비생활연구원 이강희씨)
주부교실 중앙회 윤명숙씨는 “어떤 음식점 주인은 각종 단체에서 받은 감사장과 감사패를 보여주며 ‘이런 식으로 단속하면 곤란하다’고 은근히 위협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소비자교육원 최수호씨는 “음식점들은 ‘우리 가족이 먹을 음식’이라는 생각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 들어 지금까지 명예 식품위생감시원들과 함께 시내 4381개 음식점을 대상으로 합동 단속을 벌여 식품위생법 등을 위반한 857개 업소를 적발해 영업정지나 허가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