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검찰이 당시 윤씨의 기자회견을 주선하고 사건을 윤씨의 부인이었던 김옥분(金玉分·일명 수지 김)씨에 의한 납치미수사건이라고 발표했던 국가안전기획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에 수사결과를 통보하고 윤씨에 대한 조사자료 등을 요청함으로써 안기부가 과연 사건의 실체를 알았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씨의 부인이었던 ‘수지 김’ 피살사건의 전말이 검찰 수사 결과대로라면 87년 당시 안기부는 윤씨에게 속았거나 아니면 사건을 조작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안기부가 민주화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87년 1월 당시 윤씨의 말만 믿고 납북 미수 사건을 국내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안기부의 사건 조작 여부에 대해 조사할 뜻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4년 전의 살인 혐의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여서 윤씨의 혐의가 법정에서 어떻게 가려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건 은폐 조작 의혹〓윤씨는 87년 1월8일 태국 방콕에서 안기부가 준비한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공작원이었던 수지 김과 싱가포르 북한대사관의 공작으로 북으로 납치될 뻔했으나 탈출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또 다음날 김포공항에 도착해 같은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고 언론은 이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당시 안기부는 ‘김씨는 조총련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은 공작원으로 윤씨를 월북시키기 위해 위장 결혼한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윤씨는 김씨 피살사건과 관련한 혐의를 받지 않고 풀려났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뒤 윤씨는 “수지 김을 때려 숨지게 했으며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으나 입북이 거절됐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윤씨의 바뀐 말과 기자회견 내용 등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기부는 윤씨의 거짓말에 놀아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국내 상황과 안기부의 역할 등을 감안하면 안기부가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윤씨는 귀국 후 3개월 동안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았고 홍콩 경찰이 인터폴에 윤씨를 수배했으나 안기부는 87년 1월26일 김씨의 시체가 발견된 이후 납북미수나 피살사건에 대해 함구해 왔다.
검찰은 윤씨를 조사하면서 윤씨가 무엇인가 말을 했지만 이 시점에서 밝힐 수 없고 이 사건에 대한 해명은 안기부의 몫이라고 돌리고 있다.
▽수사과정 및 재판 전망〓김씨 피살 사건은 지난해 3월 김씨 가족이 윤씨를 서울지검에 고소하면서 재수사의 계기가 마련됐다. 김씨 가족들이 “수사가 잘못돼 옥분이가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다”고 주장하자 검찰은 홍콩 경찰의 수사자료를 넘겨받아 1년여의 수사 끝에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한달여 남기고 윤씨를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윤씨는 폭행치사 혐의는 시인하지만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재판과정에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윤씨는 검찰에서 “아내는 폭행 과정에서 숨졌고 겁이 나 엉겁결에 목을 졸랐다”며 살인이 아니라 일종의 ‘사고사’였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법원에서 폭행치사로 인정되면 이미 공소시효 7년이 종료됨으로써 공소가 기각돼 윤씨는 무죄로 풀려나게 된다.
검찰이 공소유지를 자신하지만 범죄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어 이 사건의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수지 김 살해사건 일지▼
△86년 8월〓윤태식과 수지 김, 홍콩에서 동거 시작
△87년 1월 3일〓윤태식, 홍콩 주룽(九龍) 지역의 아파트에서 수지 김 살해
△〃 1월 8일〓윤태식, 안기부 주관으로 방콕에서 기자회견 갖고 납치기도 무산 주장.
△〃 1월 14일〓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발생
△〃 1월 26일〓홍콩 아파트에서 수지 김의 시체 발견
△2000년 1월〓주간동아, 수지 김 살해 사건에 대한 의혹 보도
△〃 3월〓수지 김의 가족, 수지 김은 북한 공작원이 아니고 윤태식이 살인한 의혹 있다며 서울지검에 고소
△〃 3월, 6월〓검찰, 윤태식에 대해 소환 통보했으나 불응
△〃 6월〓검찰, 윤태식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
△〃 10월초〓검찰, 홍콩으로부터 수사기록 넘겨받음
△〃 10월 24일〓검찰, 윤태식을 살인과 사기 혐의로 긴급체포
△〃 10월 26일〓윤태식 구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