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미국 생활 12년째인 C씨는 미국인 남편과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의무복무를 마치기 위해 한국행 을 선택할 수는 없다 며 그 이유를 밝혔다.
의무복무 대신 장학금을 자진해서 반납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89년 국비유학생 학술특기자로 선발된 최모씨(38)씨는 최근까지 의무복무를 이리 저리 미루다 병역기피자 로 병무청에 통보됐다.
국비유학생 학술특기자의 경우 40세까지 국내 기업 등에서 의무복무 기간 5년을 채워야 병역이 면제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부가 고급 인력 양성 을 위해 77년부터 의욕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국비유학생 제도가 유학생이 장학금 지원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아예 귀국 기피하는 현상까지 벌어지는 등 제도의 취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국비유학생 실태=26일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77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정부의 장학금 지원으로 미국 등 27개국으로 유학을 떠난 국비유학생은 1581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중 귀국해서 의무 복무를 마쳤거나 의무 복무 중인 유학생은 992명(62.7%)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국비유학생 중 장학금을 지원받고 있는 85명을 제외한 376명은 장학금 지원이 끝난 뒤에도 자비 유학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계속 해외에 장기 체류하고 있다.
무단 해외 체류자는 19명, 유학 포기나 장학금을 반납한 유학생은 25명 등이지만 의무복무를 거부한 유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환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1월 현재 장학금 환수 대상자는 모두 30명이며 환수 금액은 125만여 달러에 달한다. 이 중 44만 달러는 아직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
▼'박사 실직'-자녀 교육에 주저앉아▼
▽왜 안오나=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국내 취업환경이 악화돼 귀국을 포기하는 국비유학생들이 갑자기 늘기 시작했다.
종전까지는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국내 대학 등에 취업할 기회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박사 공급과잉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고학력자의 실업난이 심각한 상태다.
귀국하더라도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계약직 연구원 등으로 일하는 것보다 연구여건이나 자녀교육 등에 유리한 미국 등 선진국에 주저앉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현재 국비유학생 84명이 귀국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직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9월 국립보건원에 계약직 연구원으로 채용된 국비유학생 이종극(李鍾克) 박사는 2년 동안 해외 체류를 연장하며 국내 대학 7∼8곳의 일자리를 찾다가 올해 겨우 자리를 잡았다 며 최근 박사실업난 등을 감안해 국책 프로젝트 수행이나 보고서 제출 등을 점수화해 의무복무를 대체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고 말했다.
▼미국 편중-의무복무제 개선 필요▼
▽장학금 환수 속수무책=로스앤젤레스 한국교육원 서성진(徐誠珍) 원장은 로스앤젤레스 지역 국비유학생 23명 중 10명이 귀국 후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아 체류 연장 신청을 냈다 며 장학금 지급기간에는 연락이 잘 되지만 그 이후에는 연락조차 되지 않아 속수무책 이라고 말했다.
자비 유학생이 많은 미국 지역에 집중된 국비유학생 선발 정책도 문제다. 77년 이후 올해까지 선발된 국비유학생 1717명 중 1389명(80%)이 미국 지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지역 자비 유학생은 5만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박사 실업난 등으로 인해 의무복무를 면제해 달라는 국비유학생의 요청이 늘고 있다 면서 국비 유학생의 지역편중과 의무복무 대체 방안 등 국비유학생 관리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 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