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초등생 영어교육 이상열기

  • 입력 2001년 11월 26일 18시 40분


“Which fractions is equivalent to six eighth?(보기 중 6/8과 같은 분수는?)” "Three fourth.(3/4이요)”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생 대상 영어학원의 수업시간. 외국인 교사는 영어를 매개로 산수를 가르치고, 교실에 있는 7명의 학생들은 영어로 정답을 말한다. 교사는 또 ‘자습책(Practice book)’의 일정부분을 풀어오도록 숙제를 내준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별 교과서를 교재로 가르치는 이른바 ‘미국 교과서 학원’이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E, 압구정동 J, Y, 경기 일산신도시의 P, 노원구 중계동의 A학원 등 수도권에만 10여 군데 생겨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학원들은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기존의 ‘회화반복학습’을 지양하고 ‘과목중심학습(Contents-Based teaching)’을 도입, ‘외국인학교’의 수업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 해당 학원들은 영어를 수단으로 지식을 습득하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어어휘와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고 설명한다.

학원가에서는 유아기에 영어교육을 받은 ‘영어유치원 세대’가 형성되며 보다 수준높은 영어교육을 원하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 ‘미국 교과서 학원’의 인기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영어학원 원장 M씨는 “언젠가는 미국에 자녀를 보내겠다는 학부모들이 많아지면서 향후 SSAT(미국고입적성시험), SAT(미국대입수능시험) 등에 체계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미국 교과서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과서학원’에서는 영어권 나라에서 유아기를 보낸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학년에 맞춰 반을 선택하지만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1학년 과정부터 다시 시작한다.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이 어려워 따라갈 수 없기 때문.

이들이 교재로 쓰고 있는 미국 교과서는 작문 문학 문법이 통합돼 있는 어학(Language Arts)을 비롯, 수학(Math), 사회(Social studies), 과학(Science) 등이다. 어학시간에는 특히 짧은 글을 읽어주고 느낀 점을 말하도록 하는 토론식 수업을 진행한다.

4학년 사회교과서에는 미국 각 주의 주도(州都), 특산물 등이 그림과 함께 비중있게 설명돼 있고 5학년 과학과목에는 ‘Camouflage(위장)’, ‘Germination(발아)’ 등 대학생도 어려워할 만한 자연과학 어휘들이 나온다.

철저한 미국식 교육 탓에 자녀의 정체성 혼란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교과서학원’에 보내고 있는 주부 김은성씨(34·서울 서대문구 아현동)는 “세종대왕도 제대로 알기 전에 학원에서 미국독립전쟁을 배우고 있는 아이를 보면 씁쓸한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있는 원어민 교사의 자질, 학생들의 영어능력 등을 감안해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울대 영문과 송미정(宋美靜) 교수는 “단지 학생의 영어능력에 맞추기 위해 고학년학생이 내용상으로는 쉬운 저학년 미국교과서를 공부할 경우 학습전반에 대한 지적호기심이 떨어져 공부에 흥미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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