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권위원과 설립기획준비단 이외의 정식 직원은 한명도 없이 출발한 ‘반쪽 기구’여서 인권위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도 감돌았다.
▽‘인권진정’ 백태〓가장 먼저 진정을 접수한 서울대 의대 김용익(金容益) 교수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건소장에 임명되지 못한 제자 이희원씨(39·장애3급)의 진정을 대신 접수하기 위해 오전 6시반부터 사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자신도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인인 김 교수는 “능력이 있어도 장애인이라고 제 대접을 못 받는 현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우 양지운(梁芝雲·54)씨는 ‘여호와의 증인’교도로 군입대 후 집총을 거부하다 항명죄로 구속 수감 중인 아들을 대신해 진정서를 냈다. 양씨는 “집총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는 무조건 27개월 이상을 복역해야 석방된다는 법무부의 가석방 기준은 심각한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했다.
7번째로 접수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단병호(段炳浩) 위원장 등 노동자 대량구속은 인권침해”라며 진정서와 함께 세계 61개국 7만8238명의 노동자가 서명한 석방촉구서를 제출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도 75년 인혁당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있었던 인권유린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이와 함께 ‘외국인노동자의 집’ 김해성(金海性) 목사 등이 “물감회사 등이 ‘살색’이라고 표시하는 것은 검거나 하얀 피부의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차별의식을 심어준다”며 3건의 진정을 냈고 ‘동성애자 인권연대’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성전환자) 2명이 군대와 항공사에서 차별을 받았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불안한 앞날〓이날 출범한 인권위는 최소한 한달간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이는 정원 등 조직 규모에 대한 행정자치부와 인권위의 견해차로 인권위 직제가 확정되지 않아 직원을 채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321명의 직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행자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 방침에 어긋난다”며 120명을 주장하고 있다.
인권위는 또 독립적인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해 인권 및 시민단체 근무경력이 5년 이상일 때 5급, 10년 이상은 4급, 15년 이상은 3급, 18년 이상은 2급에 각각 응시할 수 있도록 한 직원채용 특례규정을 마련했으나 중앙인사위원회의 반대로 시행이 불투명한 상태다. 설령 조직 및 인원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직원 채용에 필요한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최소한 한달 이상 정상 운영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창국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오늘 이렇게 많은 진정이 들어온 것은 우리 사회에 인권의 사각지대가 많다는 것을 반영한다”며 “인권위가 단지 선전용 기구로 전락하지 않고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힘써달라”고 촉구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