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원 정년을 62세에서 63세로 연장하는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논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정작 대다수 교사들은 교원정년 논의가 자신들의 의견과는 동떨어지게 정략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데 대해 크게 상심하고 있다.
많은 교사들은 99년 무리한 정년 단축으로 교사들에게 상처를 입힌 정치권이 또다시 교단을 흔들면서 교직사회 전체가 ‘밥그릇 지키기’에만 연연하는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교사는 “차라리 파업이라도 해서 우리의 심정을 밝히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한국갤럽이 전국의 성인 남녀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2.6%가 교원 정년 연장에 대해 ‘당리당략에 의한 결정으로 본다’고 답했다.
서울 Y초등학교 P교사(36)는 “교사의 권위와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한 정년 연장이라면 고맙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정년 단축 때는 시대적인 추세인가 보다 하고 이해했지만 이번 파동에서는 교사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H중학교 C교사(45)는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교원의 사기를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어야 했다”며 “교육계가 가뜩이나 어렵고 혼란스러운 판에 무슨 소모적인 논쟁이냐”고 반문했다.
정년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자 특히 50대 이상의 나이 많은 교사들은 마치 학부모들에게 무슨 죄나 지은 것처럼 몸둘 바를 모르고 있다.
한 50대 초등교사는 “젊은 교사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방학 때도 연수를 하며 열심히 노력했다”며 “학부모단체 등이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또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을 보니 이젠 정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의 홈페이지에도 교원 정년 연장에 대한 찬반 의견과 함께 교사들의 상심 섞인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언제까지 교사들의 가슴에 못질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지방의 한 교사는 “경제논리를 들먹이며 교사를 개혁 대상으로 몰고 간 현 정부나 정치적 목적을 숨기고 교사 사기 진작을 내세우는 야당이나 똑같다”고 비난했다. 그는 “우리의 노력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교사들”이라며 “진정으로 무엇이 교육을 위한 것이고 교사를 위하는 길인지 다시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다른 교사는 “교원 정년연장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학부모단체들이 들고 일어나면 교원들은 또다시 큰 상처를 받을 것”이라며 “두번 다시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교사들은 정치권이 교원의 사기 진작을 걱정한다면 정년을 1년 늘리는 것보다는 교육과 교직 사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보내달라고 입을 모았다. K초등학교 I교사(35)는 “국내 현실에 맞지 않는 외국의 좋은 사례만 들먹이지 말아달라”며 “책상에서만 정책을 세우지 말고 제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참여연대등 "정년연장 반대"▼
학부모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원 정년연장 반대운동에 시민 사회단체들이 가세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 29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27일 성명을 발표, “당리당략을 위해 교육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반교육적인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연대회의는 “교원 정년을 다시 연장하는 것은 교육개혁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사립학교법 개정과 정년연장추친 철회를 촉구하며 한나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이수호(李秀浩) 전교조위원장 등이 경찰에 연행된 것과 관련, 이날부터 한나라당사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고 12월 1일에는 지역별로 대규모 집회도 갖기로 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