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도매상들의 이번 ‘반란’을 촉발시킨 계기는 주류구매 전용카드 도입을 둘러싼 갈등으로 분석된다.
경위야 어쨌든 이번 도전을 계기로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져 왔던 주류업계에 대한 국세청의 무소불위 행태가 부분적으로나마 수면위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국세청의 도덕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류 도매업체들이 현 중앙회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내고 그동안 모아둔 비망록을 공개하면서 국세청의 선거개입실태를 구체적으로 폭로하고 나선 것은 이들 주장 가운데 최소한 상당부분이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어 파장이 클 전망이다.
▽국세청의 중앙회 선거 개입 의혹〓주류 도매업체에 있어 도매면허권과 세무조사 권한을 가진 국세청은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기관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주류관련 사업자단체 임원진 중 일정 몫은 국세청 퇴직관료들의 ‘낙하산 인사’ 코스로 꼽히고 있다.
이번에 소송을 낸 도매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세청은 이계광 회장이 99년 서울 종합주류도매업협회장 후보로 나섰을 때부터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세청 본청과 서울청 관계자들은 다른 한 후보와 그의 측근을 차례로 불러 출마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는 것. 이 후보는 결국 출마 직후 후보에서 사퇴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또 서울 협회장에 다른 후보가 당선되자 이번에는 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고 이계광 후보를 밀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구매 전용카드제, 왜 문제인가〓이번 갈등의 직접적 계기는 국세청이 영수증 없이 주류를 사고 파는 행위를 막기 위해 7월부터 시행한 주류구매 전용카드제. ‘복마전’으로 불리는 어지러운 술의 유통체계를 바로잡고 음성탈루 소득을 찾아내 세원을 확보한다는 훌륭한 명분을 갖고도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되면서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주류구매 전용카드가 도입되면서 전국 60만여곳의 소매상과 도매상, 제조업체들은 술을 살 때마다 매번 카드로 거래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소매상들이 얼마나 많은 술을 판매하는지가 노출돼 세금을 떼먹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도입 당시부터 한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가 도매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밀실로 일을 진행했다고 도매상들은 주장하고 있다.
중앙회는 국세청과의 협의 아래 당초 3월 시행 예정으로 주류카드제를 준비하면서 지난해말 결제은행(조흥은행), 단말기 업체(지에스텔레콤), 솔루션업체(보나뱅크) 등과 업무제휴 조인서를 체결했다. 이때 잠정적으로 합의된 수수료율은 1.7%였고 단말기 대여료가 50만원으로 도매상들이 부담해야하는 금액만도 연간 1000억원 수준이었다.
도매상들은 3월 도입직전에야 이런 사실을 통보받았고 부담이 너무 크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도매상들의 거센 반발로 수수료율은 결국 0.14%까지 낮아졌고 단말기도 무료로 대여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결제은행 등은 중앙회와 시도별 협회에서 결정했으며 국세청은 관여하지 않았다”며 “수수료율이 낮아진 것은 카드방식이 신용카드 방식에서 직불카드 방식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매상들은 또 국세청의 감시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소매상들이 카드 사용을 거부하고 있어 제조업체에서 현금으로 사온 주류를 소매상에 외상으로 공급하며 자금사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회는 전국 1250여개 도매상을 관장하는 단체로 15개 시도별 협회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이번 소송은 15개 시도별 협회 가운데 서울 경기 대구 경남 충북 등 5개 시도 협회가 대표로 제기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