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국장의 진술이 사실로 확인되면 이 전 청장은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범인도피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전 청장은 이날 오후 서울지검 기자실에 보낸 경위서를 통해 “사후에 직원들로부터 국정원과 협조 처리했다는 보고를 구두로 받은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지만사건 수사내용에 관해 김 전 국장은 물론 부하직원들에게서 보고받은 사실이 일절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국장은 28일 “지난해 2월15일 경찰청장실에서 이 전 청장을 만나 5∼6분간 이 사건이 실제로는 단순 살인사건이나 그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고 진술했다는 것.
김 전 국장은 이 전 청장을 만난 직후 김모 전 국정원 수사1단장에게 “경찰 수사기록을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2∼3일 뒤 국정원 직원들이 경찰청에서 기록을 가져와 복사하고 돌려준 뒤 수사가 중단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또 당시 경찰 내사종결 기록의 ‘종결 사유란’에 ‘본청의 수사 보류 지시에 따라’라고 적혀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경찰 관계자들은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 필요성에 따라 사건을 넘겨줬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내사종결 기록에 그런 사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검찰은 김 전 국장이 엄익준(嚴翼駿·작고) 당시 국정원 2차장에게 이 전 청장을 만난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전했다.검찰은 임동원(林東源) 당시 국정원장(현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이 엄 전 차장의 보고를 받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임 특보를 상대로 서면질의를 할 것인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검찰 관계자는 “이 전 청장에 대한 조사를 끝낸 뒤 관련자들을 일괄 형사처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이 전 청장은 경위서를 통해 “시기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김 전 국장이 불시에 사무실에 찾아와 접견실에서 4∼5분 정도 만났는데 메모를 꺼내며 협조할 사항이 있다고 해 ‘무슨 건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바쁘니 실무자들과 협의하시오’라고 말한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이 전 청장은 또 “검찰조사를 받은 김병준 경찰청 정보국장이 전화를 걸어와 ‘청장님께서 국정원 협조사항에 대해 검토해보라고 하신 것 같아 제가 검토 후 사건을 이첩했고 사후 구두보고를 한 것 같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을 보고한 기억은 없고 그 후에 추가보고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이 전 청장은 특히 “11월15일 김 전 국장이 만나자고 해 나갔더니 ‘내가 곤란하게 됐으니 엄 전 차장이 전화를 걸어 수사를 중단하게 된 걸로 해 달라’고 요청해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