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호스피스' 원주희씨의 말기암환자 사랑

  • 입력 2001년 12월 7일 18시 06분


이제 열여덟 살인 김진태군(가명)은 골육종 말기 환자다. 근육과 뼈가 썩어들어가는 불치병 판정을 받고 ‘샘물 호스피스(hospice·병자나 빈곤한 사람들의 집)’로 온 지 일주일이 됐다.

부모조차 포기한 아들이지만 ‘샘물’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뼈를 에는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손잡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암 등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는 ‘샘물 호스피스’ 회장인 원주희(元珠喜·49)씨는 ‘행복한 장의사’다.

1975년 중앙대 약대를 졸업하고 10여년간 약사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던 그가 호스피스 활동에 뛰어든 것은 87년.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는 말기 환자들이 행복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에서 약사의 길을 포기하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9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사재를 털고 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경기 용인시에 샘물 호스피스를 설립한 것이 93년. 상근 의사 1명과 간호사 8명, 18개 침상을 갖춘 제대로 된 호스피스 시설로 키우기까지 그가 겪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부로부터 보조금 한푼 못 받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렇다치더라도 하루 걸러 한 번씩 장례를 치르는 환자수용시설을 허용할 수 없다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용인시 백암면에 자리를 잡기까지 4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지금까지 ‘샘물’을 거쳐간 말기 환자들은 모두 1000여명. 지난해에는 220명의 장례를 치렀고 올해는 300명가량의 환자들이 이곳을 거쳐갈 것으로 예상된다.

샘물 호스피스에 오는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은 말기 환자들. 그 중에서도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외로운 말기 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머무는 기간은 평균 25일.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병세가 호전돼 6개월에서 1년 이상 생명을 연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밤에 환자를 잠들게 하는 것은 수면제나 진통제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앨 수 있도록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이지요.”

샘물 호스피스의 장례식은 ‘축제’처럼 치러진다. 환자들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늘 장례를 치러야하기 때문에 샘물 호스피스 내에는 장례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자그마한 예배 공간이 있고 장례용 자동차도 한 대 있다. 시에 장의차로 등록된 이 차량은 시체 한 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봉고차를 개조한 것으로 평상시엔 원 목사가 업무용으로 쓴다.

그는 이달 중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집을 팔고 이곳으로 이사를 온다. 아내와 대학생인 딸들이 아버지와 함께 봉사를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연간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5만여명에 이릅니다. 암환자 한 명이 있으면 최소한 주변 사람 10명 이상의 삶도 갈가리 찢기는 게 현실이지요. 해마다 사망하는 암환자의 절반만이라도 이곳에서 마지막 날들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꿈입니다.”

샘물 호스피스 031-333-8632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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