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생명을 통고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암선고를 받은 뒤 극단적으로 다른 삶의 길을 택한 두 사람이 있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지난달말 한 시중은행의 대출과장을 지낸 김모씨(42)를 횡령혐의로 구속했다. 고객들의 정기예금을 몰래 해지해 고객 돈 11억원을 빼돌린 혐의.
김 과장이 며칠째 무단결근하자 은행측은 내부조사를 통해 김 과장의 범죄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수배자가 된 김씨는 지난달 중순 경기 과천시 경마장 앞에서 경찰의 차량 불심검문에 걸려 구속됐다. 검거당시 김 과장은 배에 튜브를 꽂고있는 상태였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5년전 직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몸 상태가 계속 악화됐고 감원 소문도 돌자 ‘될 대로 돼라’는 심정으로 고객 돈을 가로챘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횡령액 중 4억원은 이미 경마로 날린 상태였다. 경찰은 김씨가 전과가 없으며 건강도 나쁘다는 점을 감안, 불구속하려 했지만 검찰은 구속수사 지시를 내렸다.
▼심기일전…인술 실천▼
충북 제천시 전 서울정형외과 원장 오흥룡(吳興龍·43) 박사. 오 박사는 작년 10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암치료를 받으면서 ‘앞으로 사는 인생은 덤인생이니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자’고 결심, 국내외 벽지를 돌아다니며 인술을 베풀고 있다.
8월에는 항암주사를 맞은 다음날 네팔의 히말라야로 가서 500여명의 환자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항암주사를 맞고 나면 무척 고통이 심하다. 이달 초순에는 충북 벽지인 단양군 어상천면에서 80여명의 노인을 상대로 의료봉사활동을 폈다.
“지금까지 환자를 만나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질병만 보였는데 스스로 병을 앓으면서부터 비로소 병 때문에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의사는 환자에게 감정이입해야 하고 감정의 교통이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되고 치료효과도 높다는 것이 오 박사가 내린 결론. 오 박사는 내년에도 주기적으로 국내외 오지를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펼 계획이다.
오 박사는 “내가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느냐는 생각에 잠을 못이루기도 하지만 암발병이 의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주변 사람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려고 노력하면서 삶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기·윤상호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