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울∼지∼마, 난 ∼괜∼찮∼아∼요.”
28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 연립주택의 3평 남짓한 작은 방. 누운 채 힘들게 입을 뗀 윤승희(尹承喜·25·여)씨의 가냘픈 손을 꼭 잡은 이동식(李東植·80) 할머니의 주름 잡힌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이 할머니와 중증 뇌성마비 환자인 윤씨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 그러나 이 할머니는 25년간 거동이 불가능한 윤씨를 친자식처럼 돌봐왔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것은 1977년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였다. 아는 사람이 운영하던 이 곳을 찾은 이 할머니의 눈길이 뇌막염에 걸린 한 갓난아기에게 멈췄다.
“친아들도 어렸을 때 뇌막염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 가여워 두고 볼 수 없었어.”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 이 할머니는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자신도 빠듯한 형편에 병든 남의 자식을 거두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4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 할머니는 과일행상과 삯바느질 등으로 1남2녀를 키웠다. 오랜 고생 탓에 그녀의 몸은 골다공증과 당뇨, 백내장 등 갖은 병마에 시달렸다.
“너무 힘들어 가끔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는 아이를 차마 떼어버릴 수 없었던 거야.”
그러나 다른 가족들은 이 할머니의 대가 없는 희생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당장 생계가 급했기 때문에 수차례에 걸쳐 이 할머니 몰래 아이를 보육원에 되돌려보냈다.
그러나 매번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는 이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이젠 두 다리가 거의 마비된 데다 말도 잘 못하는 윤씨는 이 할머니 없이는 단 한시도 삶을 지탱할 수 없다. 윤씨의 새해 소망은 매달 자신에게 나오는 20만원 남짓한 생활보조금을 모아 할머니가 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백내장 수술을 받게 해주는 것. 그러나 이 돈으론 매달 윤씨의 약값조차 대기가 벅차다.
이 할머니는 “어릴 적 제대로 치료를 못해줘 뇌성마비에 걸린 승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며 “승희가 제대로 된 재활치료의 기회를 갖는 것이 눈감기 전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할∼머∼니 잘∼못∼이 아∼니∼야.”
곁에서 이 할머니를 지켜보던 윤씨는 힘들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떨리는 손으로 할머니의 눈가를 훔쳤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