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고수’ 낀 주가조작단 적발

  • 입력 2001년 12월 28일 23시 20분


의사와 대기업직원 등이 포함된 주가 조작단 5명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특히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세조작은 증권사 직원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던 것과 달리 이들은 인터넷 채팅방을 통해 주식투자 동호회를 만들어 ‘작전’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끼리도 속이고 속은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감독원은 28일 강모씨(47·의사·경기 부천시)와 문모씨(36·회사원·경기 수원시), 고모씨(29·무직·서울), 김모씨(29·무직·대구) 문모씨(41·화예업·대구) 등 5명을 주가조작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고씨와 김씨, 회사원 문씨는 작년 말 P증권사이트의 동호인방에서 ‘차트분석의 대가’ ‘대박주, 세력주 포착의 1인자’로 유명한 화예업자 문씨를 알게돼 주식투자기법을 배웠다.

고씨 등은 또 올해 초 화예업자 문씨의 소개로 인터넷에서 역시 자칭 증권투자의 ‘재야고수’인 의사 강씨를 알게됐다. 강씨는 진료도중에도 수십번씩 주식을 사고팔 정도로 주식투자에 중독됐다는 것.

강씨는 고씨 등에게 자신을 “우선주 투자의 대가”라고 소개한 뒤 “유통주식이 별로 없는 우선주는 몇 명만 공모를 해도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주가조작을 권유했다. 고씨 등은 친인척들에게 수억원씩을 빌려 대규모 허수(虛數)주문을 내면서 S사 주가매입에 나섰다.

그러나 며칠 뒤 S사 우선주는 반토막이 나면서 고씨 등은 투자원금을 대부분 날렸다. 알고 보니 강씨는 이들이 열심히 주식을 매집할 때 자신이 갖고있던 주식을 다 처분해서 3억원을 벌었다. 고씨는 강씨가 일하던 병원으로 찾아가 “약속을 위반했다”며 항의했지만 강씨는 “불법행위를 위한 약속은 법적으로 무효니까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화가 난 고씨는 병원에서 행패를 부렸고 이 사실을 알게된 병원 측은 강씨를 해고했다.

고씨는 금감원 조사에서 “재야고수라는 말만 믿고 같이 한탕을 하려다 오히려 이들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땅을 쳤다.

금감원 자본시장감독실 김병태 팀장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아마추어 투자자들이 손쉽게 주가조작의 유혹에 빠지고 있다”며 “그러나 ‘재야고수’에 휩쓸려 위험한 장난을 시작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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