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전화' 신종공해…업체서 번호빼내 무차별 마케팅

  • 입력 2002년 1월 7일 17시 18분


한 달 전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강모씨(28)는 4일 K디자인학원에서 학원에 다니라고 권유하는 전화를 받고 놀랐다. 번호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친구들도 자신의 번호를 잘 모르는데 난데없이 학원에서 광고성 전화(스팸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에게 e메일로 보내는 스팸메일에 이어 최근에는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무차별적인 스팸전화 때문에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스팸전화는 대부분 전화번호 유출에 따른 것이지만 전화번호 유출을 규제하는 법 규정이 미비하고 스팸전화 자체에 대한 규제 법규도 없는 상태라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본인동의 의무화' 법제정 급해▼

▽스팸전화 피해 실태〓회사원 김모씨(30)는 최근 1주일 동안 휴대전화로 신용카드회사와 콘도회사, 영어교재 회사, 학원 등에서 20여 차례나 스팸전화를 받았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신고했다.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20여건에 불과하던 스팸전화 피해 신고건수가 9월 40건, 10월 43건, 11월 55건, 12월 59건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스팸전화에 대해 아직 크게 신경 쓰지 않아 피해신고가 적을 뿐이지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스팸전화 급증 이유〓카드사와 보험회사, 외식업체 등 비교적 덩치가 큰 업체들은 각종 인터넷 사이트 운영업체 및 이동통신회사와 제휴해 가입 회원들의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 업체와 이동통신사들은 대부분 회원 가입 약관에 개인정보 공개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문구를 넣어 이에 동의하는 가입자들의 전화번호 등을 제휴 업체들에 제공하기 때문에 사실 이런 정보 공유는 합법인 셈이다.

그러나 한 인터넷 업체 관계자는 “가입 약관에 정보공개 여부를 묻는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아는 가입자들은 거의 없다”며 “가입을 위해서는 당연히 정보공개에 동의해야 하는 방식으로 돼 있는 것도 문제고 약관을 꼼꼼히 읽지 않은 이용자들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대형 카드사 관계자는 “현재 대형 카드사들은 각각 100여개 이상의 인터넷 업체와 업무 제휴를 맺고 회원들의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스팸전화를 걸고 있다”며 “대형 보험사나 외식업체 등도 이런 방법으로 텔레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처벌 규정 미비〓개인정보를 본인의 동의 없이 유출하면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고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돼있다.

그러나 가입 약관을 통해 이용자의 동의를 받고 전화번호 등을 공유하는 것은 합법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 또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다시 스팸메일을 보내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스팸메일 제재 법규와는 달리 스팸전화에 대한 제재 법규는 없는 상태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보정책팀 조양호(趙暘昊) 팀장은 “스팸전화에 대한 규제 법규가 시급히 마련돼야 하고 가입 약관에 정보공개 동의 여부를 묻는 문구를 눈에 띄게 표시하거나 별도로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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