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수주경쟁 아파트 투기 부추긴다

  • 입력 2002년 1월 9일 17시 53분


서울 강남지역 등에서 불고 있는 아파트 투기 바람을 타고 건설업체들의 주거단지 재건축 수주 경쟁이 갈수록 과열 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경쟁사를 비방하는 흑색 선전물을 배포하거나 조합원에 대한 경품 제공, 금품 살포는 물론 전문 운동원과 조직까지 동원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경우 대규모 재건축 단지의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업체당 50억∼100억원가량을 ‘홍보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과당경쟁은 필연적으로 건축비 상승을 초래하는 등 입주자의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지나친 재건축 수주 경쟁은 재건축 요건이 안 되는 아파트들까지 재건축 대상으로 끌어들여 물량을 늘리면서 분양시장을 달궈 부동산 과열 투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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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경쟁〓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2차 재건축 수주 경쟁에서 한 시공 희망업체는 조합원 총회 전날 조합원 2000여명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으로 초청해 사업설명회를 가졌다. 당시 설명회에 들어간 비용만 수억원대. 조합원 L씨는 “하루에 10차례 정도 시공 희망업체의 홍보직원들이 찾아왔고 모델하우스에서는 그릇세트와 주방기기 등 10만원 안팎의 선물이 뿌려졌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들은 재건축 수주 경쟁에서 전문 운동조직과 계약하고 홍보전을 펼친다. 이들 조직은 부동산 분양시장이나 건설회사에서 5년 이상 일한 경험이 있거나 심지어 선거판에서 뛴 경력자들을 팀장으로 350∼450명의 홍보요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일당과는 별개로 성공시 총 공사비의 0.3∼0.7%를 보수금으로 받는다. 현재 이런 재건축 전문 운동 조직은 전국적으로 5∼8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주자 피해〓과열 수주 경쟁에 따라 업체들이 쏟아 붓는 홍보비는 결국 건축비 상승을 불러온다. 업체들은 시공사로 선정되면 갖가지 명목으로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추가 정산금을 요구하는 게 일반적.

재건축 컨설턴트 C씨는 “소형 평형의 경우 2000만원, 대형 평형의 경우 5000만원가량의 추가 정산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과 대책〓토코마 기술연구소 김구철(金九澈) 소장은 “시공 희망회사들이 공동 홍보전을 개최토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부작용이 많은 위임장의 경우 제3자의 제출을 금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청 주택기획과 김봉현(金奉鉉) 과장은 “시공사 선정이 법적 책임이 약한 재건축 추진위원회에서 이뤄지다 보니 로비에 쉽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며 “정식 조합 설립과 법인 등록 후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주거환경과 김경식(金景植) 과장은 “시공사는 단순 도급업자의 역할만 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조합원의 이익과 관련된 모든 회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등 법적 보완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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