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처장 '몸통' 역할 의혹

  • 입력 2002년 1월 9일 23시 04분


박준영(朴晙瑩·전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 국정홍보처장이 '수지 김 살해사건'으로 구속된 윤태식(尹泰植)씨를 수 차례 만나고 패스21의 기술시연회를 주선해준 사실 등이 확인됨에 따라 '윤태식 게이트 의 몸통'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박 처장은 "윤씨가 청와대로 불쑥 찾아와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유착관계는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해명 자체에 모순이 많다. 또 박 처장 이외에 다른 정관계 인사들의 해명에도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 99년의 '옷 로비 의혹 사건'처럼 '고위층의 거짓말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도 있다.

▽박 처장과 윤씨의 유착 의혹=박 처장이 윤씨를 만난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박 처장의 경우는 다르다. 박 처장과 윤씨의 만남은 지속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기술시연회 주선과 지인의 취직 등이 이뤄졌다.

또 박 처장이 국내외 언론보도 상황을 총괄하는 공보수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2000년 1월부터 언론에 의해 불거지기 시작한 윤씨의 수지 김 살해사건 연루 의혹을 몰랐을 리 없다.

따라서 박 처장이 지난해 10월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뒤에도 윤씨를 만난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몸통 논란=윤씨 사건과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은 어떻게 윤씨가 2000년 1∼5월 새천년 벤처인과의 만남 과 청와대 공식만찬 등 대통령 행사에 참가했고 그의 회사가 급성장하게 됐느냐는 것이다.

윤씨가 청와대 행사에 참석할 당시 신원확인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위 등과 관련해 "지난해 연말부터는 청와대 내부에 비호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박 처장 등은 침묵으로 일관하다 9일 오후에서야 "만난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

박 처장은 "윤씨를 처음 만나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어느 날인가 윤씨가 불쑥 찾아와 만났다"고 말했지만 공보수석 이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이 불쑥 찾아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따라서 박 처장이 윤씨와의 관계에 대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때문에 박 처장과 그 주변에 윤씨 사건의 몸통 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윤씨에 대한 정보통신부의 호의 =윤씨는 99년 당시 남궁석(南宮晳) 정통부 장관을 자신의 회사로 초청해 기술시연회를 열었다. 또 그해 말 서울 마포의 한 빌딩에서 기술시연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에도 현역 국회의원과 국가정보원 간부 등이 참석했다. 이 행사들은 윤씨 회사가 뜨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여기에서 무명의 윤씨 회사에 대해 어떻게 이 같은 호의가 베풀어졌느냐가 의문으로 대두된다.

패스21 감사인 김현규(金鉉圭) 전 의원은 "일부 언론을 통해 벤처기업 지원정책이 부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고충을 호소한 적이 있고 이 과정에서 한 청와대 관계자의 소개를 받아 남궁 전 장관을 만났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이 말한 '청와대 관계자'는 정무수석에서 갓 물러난 김정길(金正吉) 전 행정자치부 장관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수석은 장관과 정무수석 시절 윤씨를 두차례 만났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김 전 수석과 남궁 전 장관 모두 한 청와대 관계자의 소개를 받아 남궁 전 장관을 만났다"는 김 전 의원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지난해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도 찾아가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박 전 수석측은 "잘 알고 지내던 고(故) 이수인(李壽仁) 의원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그 자리에 김 전 의원이 있었다"며 "김 전 의원이 패스21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소관업무가 아니어서 어렵겠다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수사 전망=9일 김현규 전 의원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정관계 로비의 몸통'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원에 대해서는 우선 정통부 장관이었던 민주당 남궁석 의원을 비롯해 청와대 관계자를 접촉한 경위와 패스21의 급성장 배경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어 남궁 의원과 박 처장, 김 전 수석, 김성남(金聖男) 변호사 등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

특히 윤씨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접견하고 정관계 고위인사들에게 기업설명회 등을 하는 과정에서 박 처장이 로비를 받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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