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교생 남매의 자립학습…"공부도 용돈도 내손으로"

  • 입력 2002년 1월 17일 14시 46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스토니브룩에 사는 앤드루와 대니엘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중상층 가정의 고교생 남매다.

앤드루는 워드 멜빌 고교 11학년(고2에 해당)이고 여동생 대니엘은 10학년. 스탠퍼드대 의학박사로 유전학 분야를 전공하는 아버지 대니얼 보겐헤이건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의대 교수, 어머니 데브라는 초등학교 사서로 일한다.

지난해 말 대지 700평 규모인 앤드루네를 찾았을 때 남매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안정돼 있고 반듯하다는 것이었다. 식구들의 말씨가 워낙 나직하고 발걸음이 조심스러워 ‘풀먹는 개’라는 별명이 붙은 애완견만 아니면 집안이 절간 같았다.

마치 장학사를 맞는 학급 반장처럼 앤드루와 대니엘은 깎듯이 기자를 거실로 안내한 뒤 단정한 어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또래들이 많이 쓰는 은어나 줄임말은 외국인인 기자를 의식해서인지 한번도 쓰지 않았다.

부촌에 살면서도 앤드루는 취미로 배우는 펜싱 경기에 나가기 위해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로 1000달러를 벌어야 했다. 앤드루는 “부모님은 한푼도 주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앤드루는 그 돈으로 최근 유타주에서 열린 펜싱대회에 다녀왔다. 명문대 진학을 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하다.

대니엘도 대학생이 되면 타고 다닐 중고차를 사기 위해 봄부터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펜싱에 고스란히 들이고 있는 앤드루는 면허증을 받는대로 “집에 버려두다시피한 고물차를 끌고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매는 오후 2시15분 학교가 파한 뒤 펜싱과 클래식 기타 레슨을 받고 나면 오후 4시부터는 밤늦게까지 숙제에 매달린다.

“숙제가 많고 어려워요. 대학에서 학점을 인정하는 AP(Advanced Placement) 과목으로 물리 미국사 비교정부론 3과목을 듣는데 물리 성적이 좋지 않아요. 하지만 공부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부모님이 하나도 도와주시지 않아요. 그저 책상에 앉아 있기만을 강요하실 뿐이예요.”(앤드루)

9·11 테러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앤드루와 대니엘은 보수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다.

“아프간 전쟁 초반에 전력을 기울여야 전쟁도 빨리 끝나고 경제 부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앤드루) “전쟁은 나쁜 거예요. 우리는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에서 남은 돈으로 희생자들을 도와주고 있답니다.”(대니엘)

스토니브룩(미 뉴욕주)〓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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