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와 김경한의 아름다운 우정

  • 입력 2002년 1월 17일 17시 25분


이명재(李明載) 신임 검찰총장과 함께 막판까지 총장 후보로 검토됐던 김경한(金慶漢) 전 서울고검장이 17일 이 총장의 취임식을 3시간 앞두고 퇴임했다.

지난해 5월 서울고검장이었던 이 총장이 신승남(愼承男) 총장의 취임을 앞두고 아름다운 퇴장 을 했던 것처럼 김 전 고검장도 '아름다운 양보'를 하고 떠났다.

이 총장과 김 전 고검장은 고교와 대학 1년 선후배 사이로 1966년 외환은행 외환3계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

이 총장은 그 무렵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던 서울대 법대 동기인 박경재(朴慶宰) 변호사의 권유로 사법시험 준비를 하게 됐고 김 전 고검장도 그 뒤를 따라 70년에 함께 사시에 합격했다. 이 총장과 김 전 고검장은 그 후 30년 동안 검사로서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조직 내에서의 주요 보직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에서는 흔히 친구도 선후배도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신 전 총장의 후임으로 이 총장과 김 전 고검장이 유력하게 거론될 때 이 총장은 "나보다 더 적임자가 검찰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 그 적임자 는 바로 김 전 고검장이었다.

김 전 고검장도 "명재 형이 오면 검찰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리를 비켜줄 뜻을 나타냈고 이 총장이 취임하는 날 그는 조용히 검찰을 떠났다.

이런 광경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과거에는 검찰총장 임명을 앞두고 검찰 내부에서 동기는 물론 선후배끼리도 정도를 벗어난 경쟁과 암투를 벌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 총장과 김 전 고검장은 총장 임명을 앞두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아 정치권이 오히려 의아해했다는 후문이다.

후배 검사들은 두사람의 처신이 고교 선후배 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 전 고검장은 퇴임식에서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음으로 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에머슨의 시귀를 남기고 떠났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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