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륜고검장 퇴임사 “정부 책임전가 공감못해”

  • 입력 2002년 1월 18일 19시 16분


99년 1월 ‘항명 파동’으로 면직됐다가 지난해 8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복직했던 심재륜(沈在淪) 전 부산고검장이 퇴임사에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심 전 고검장은 18일 오후 3시 부산고검 13층 회의실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검란(檢亂)의 원인과 배경은 거듭된 검찰 인사의 잘못과 검찰권에 대한 간섭에서 비롯된 만큼 인사권자인 정부 최고책임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이 말은 최근 ‘검찰의 잘못으로 정부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겨냥해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심 전 고검장은 “문제가 된 일부 검사의 책임문제는 차치하고 이와 무관한 전체 검사가 잘못한 것처럼 호도하면서 마치 정부는 무관한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발상과 주장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밝힌 ‘특별수사검찰청’ 설치 방안에 대해서도 “본질을 외면한 채 일부 조직의 명칭이나 바꾸고 물을 타는 식의 제도변경이라든가 지방색의 부분적 안배와 같은 인적교체를 통해서는 검찰의 중립과 독립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비판했다.

“칼에는 눈이 없다. 칼은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칼을 쥔 사람이 찔릴 수도 있다”는 ‘독설(毒舌)’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또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은 이미 본연의 검찰이 아닐 뿐만 아니라 두목의 눈치나 보며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폭력조직과 다를 바 없다고 한 어느 현직 검사장의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99년 항명파동 당시 성명서에서 주장했던 ‘정치검찰론’도 다시 제기했다.

“검찰이 신뢰를 잃은 것은 인사 특혜와 권력의 공유 내지 신분적 상승을 위해 권력의 주변에서 무리를 지어 줄을 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앞장서 충실한 ‘시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퇴임 이유에 대해 “검사 신분 보장의 상징적 의미를 위해서라도 일정기간 복무하고 적절한 시기가 오면 미련 없이 검찰을 떠나겠다고 한 복직 때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명재(李明載·사시11회) 검찰총장과 사시 동기인 김경한(金慶漢) 전 서울고검장은 17일 “강자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외면한 일은 없었던가 부끄럽게 여긴다”는 퇴임사를 남기고 떠났다.

김영철(金永喆) 전 법무연수원장은 퇴임식에서 “검찰이 원칙과 정도만을 걸어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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