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신고꾼’ 기업 뺨친다

  • 입력 2002년 1월 23일 18시 09분


19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경부고속도로 상하행선엔 주말을 맞아 차량이 늘어나면서 버스전용차로로 들어서는 승용차들이 속속 눈에 띄었다.

교통법규 위반 전문신고꾼 A씨는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인근 야산에 자리를 잡고 이날 처음 온 다른 신고꾼 B, C씨와 인사를 나눴다. 이곳에서 ‘팀장’으로 통하는 A씨는 두 사람에게 1시간40분간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촬영하도록 허락한 뒤 ‘촬영을 방해하는 운전자나 다른 신고꾼들을 쫓아내라’며 D씨를 경호조로 붙여줬다.

오후 3시경 할당된 촬영시간이 끝나자 B, C씨는 A씨를 찾아와 촬영을 허락해준 대가로 신고사진 필름 1통을 상납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시간이 끝나가는 오후 7시경 A씨는 철수를 준비하며 마지막으로 망원렌즈를 통해 인근의 또 다른 신고꾼 조직 2곳의 움직임을 살폈다.

B씨는 “이곳은 시간당 수십만원어치의 신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여러 신고꾼 조직이 활동 중”이라며 “조직간에 마찰이 있어 최근 서로 촬영영역을 조율했다”고 귀띔했다.

최근 고속도로 주변을 중심으로 교통법규 위반 전문 신고꾼들이 조직화 기업화하고 있어 운전자들은 물론 경찰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고꾼의 기업화〓지난해 4월경 전문신고꾼 김모씨(46)는 다른 신고꾼 5명을 고용해 ‘Y벤처’라는 교통법규 위반 전문신고회사를 설립했다.

사업자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이 회사가 전국의 고속도로와 대도시의 주요 위반지역에서 촬영한 신고사진은 무려 10여만장. 같은 해 10월 신고꾼들이 각자 독립해 결국 회사 문을 닫았지만 7개월간 올린 신고보상금 실적이 무려 2억여원에 달했다.

신고꾼들에 따르면 회사 형태는 아니지만 전국의 고속도로 등에서 활동중인 신고꾼 조직은 15개 정도. 이들 조직은 A씨처럼 팀장급의 경우 월 5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꾼들이 조직화에 나선 이유는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

전문신고꾼 박모씨(40)는 “경찰이 시내 주요 촬영지역에 사진촬영 경계표지판을 설치한 뒤 신고꾼들이 고속도로 주변으로 모이고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목 좋은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가 벌어지면서 결국 신고꾼 조직들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신고꾼 조직들은 한 경찰서에 수십건씩 신고하면 보상금 지급 심사가 까다로워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근 가족이나 친척 명의로 여러 경찰서에 분산해 신고 접수를 하고 있다.

▽문제점과 대안〓한 경찰 관계자는 “신고꾼 조직과 그 가족들이 촬영조, 사진현상조, 신고접수조 등으로 철저히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며 “이들은 거액의 수입을 올리지만 세법상 범죄를 신고해 받는 보상금은 과세 대상이 되지 않아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 조직에 폭력배들이 간여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내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전문 신고꾼 조직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며 “신고보상금제는 월드컵 이후 국민 여론을 감안해 폐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 신고꾼 김모씨(34)는 “신고꾼들의 대부분은 실직자이고 이들의 신고 활동으로 교통질서가 바로 잡힌 부분도 적지 않다”며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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