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제자 그림에서 고민과 꿈을 읽지요"

  • 입력 2002년 1월 23일 21시 50분


“툭하면 학생들에게 ‘야’ ‘너’ 하던 말투가 부드러운 말씨로 변하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제자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큰 기쁨이죠.”

8년째 학생지도부를 맡고 있어 별명이 ‘저승사자’로 통하는 한진고교 소병건(38·영어 담당)교사. 그는 지난해부터 교무실에 불려온 학생들에게 흰 종이와 연필부터 건네준다.

별다른 꾸중없이 “여기에다 나무 그림을 그려보렴. 그냥 마음 내키는대로 아무거나 그리되 나무를 반드시 집어넣어야 된다”고 주문한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소 교사는 학생들의 과거 경험, 현재의 심리 상태, 미래 설계 등을 마치 ‘점쟁이’처럼 들려준다. 한국심성개발원에서 1년간 연수했던 ‘미술 치료법’ 강좌의 이론을 토대로 학생들의 심리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어 1∼2주 간격으로 학생과 개별 상담을 하면서 ‘어항 물고기 그림’ ‘동작 그림’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게 해 대화의 폭도 넓혀 나간다.

이같은 미술치료법으로 상담한 학생은 그동안 60여명. 이 중 76일간의 무단 결석으로 제적처분까지 받았던 이희망군(가명·18·2학년)은 학교에서 이제 모범생으로 통한다.

소 교사의 권유로 지난해 7월 복학한 이 군은 최하위권 성적에서 중간 수준으로 뛰어 올랐고 수행평가 과제물 100% 제출, 지각 결석 0% 등으로 예전과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군은 방학을 맞은 요즘 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림을 매개로 교사와 제자 간에 말문을 쉽게 틀 수 있었어요. 신상기록카드를 보지 않고 선입견없이 오직 그림을 통해 제자의 모습을 보려고 하니 아이들도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더군요.”

소 교사는 이같은 학생지도 경험을 ‘희망이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꿈’이라는 글로 정리해 인천시교육청에 제출했다.

시교육청은 소 교사를 비롯한 인천지역 교사 21명의 우수 생활지도사례를 모아 최근 ‘하늘색 꿈을 가꾸는 열매들’이라는 책자로 펴냈다. 600권을 찍어 지역내 학교와 도서관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이 책에는 △집단 따돌림 극복 △부적응학생 지도 △금연 지도 △무단결석 지도 등 여러 유형별로 나눠 사춘기 청소년들을 ‘부드럽게’ 이끄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박희제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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